[시론/김영봉]보수주의자가 더 행복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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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
“과도한 경쟁사회, 약육강식의 자본주의가가 빚은 범죄다.” “낙오자에 대한 배려 미비가 원인이다.”

최근 성폭행 살인과 ‘묻지 마’ 흉기난동이 자주 일어나자 ‘사회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만연하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다.

이들은 대체로 흉악범죄는 나쁜 사회구조가 만드는 것이므로 범죄자보다 ‘사회’를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저변에는 ‘한국 자본주의가 모든 불행의 원죄자(原罪者)’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주어진 현실과 ‘自助의 힘’ 긍정

그러나 한국이 그렇게 불행이 가득한 사회인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실업률 등 경제지표들은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비교해 훨씬 양호하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특별히 더 불행할 이유는 없다. 언뜻 살펴봐도 그간 우리 사회는 세계적 경쟁에서 성공한 기업 예술가 연예인 운동선수들을 무수히 배출했다.

최근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일제히 올렸는데 과거 천대받던 우리의 국격이 이렇게 올라갔나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한국인이 글로벌 자본주의 질서에서 성취와 행복을 누릴 자질을 세계무대에 충분히 증명했다는 것이다.

여야 대선후보들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사람이 먼저다” 등 모두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책임지겠다’는 공약을 하고 있다. 이는 장래 우리 사회에서 ‘법치와 개인의 책임’을 덜어내고 ‘국가 책임과 관용’으로 메우겠다는 의미다. 이 미래사회의 모습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세 번 읽고 크게 감동해 참모들에게 “한국적인 적용”을 지시했다는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European Dream·2004년)’에서 대충 살펴볼 수 있다.

리프킨은 개인이 열심히 일하고 자립기반을 개척해서 번영을 이루는 아메리칸 드림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고 유럽식 삶이 지구촌의 꿈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자율적 노력 대신 더 많은 ‘사회적 관계(embeddedness)’를 갖고 더 깊이 사회적 가치에 빠지는 유러피안 드림이야말로 완전하고 의미가 있는 삶이라고 했다. 개인적 성취나 직업윤리를 삶의 중심적 가치로 놓기보다 삶의 질과 사회적 소속이 중요하므로 공동체의 활동, 환경, 문화예술, 스포츠 등에 깊이 빠지는 생활이 필요하며 더 짧은 근로시간과 긴 여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유러피안 드림의 결과가 어떠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유럽 남부 국가에서 보여주는 국가경제 파탄과 추락은 모두 물 쓰듯 쓴 복지·통합사회의 향연 비용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공사(公私)기관에서 흔히 보는 짧은 근무 시간, 나태한 일처리 등은 개인의 일탈과 도덕적 해이를 면책해 주는 통합사회의 결과다. 즉, 너의 무책임과 나의 무책임을 함께 관용하자는 유럽식 사회적 담합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불안하고 불편하고 귀책성(歸責性) 없는 유럽식 삶을 알면 성질 급하고 내 것을 결단코 챙겨야 하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동의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치인의 ‘무조건 베풀기’ 경계를

얼마 전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2008년)’의 저자인 아서 브룩스 미국기업연구소(AEI) 회장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최근의 좌파 우파의 행복 관련 연구 결과는 모두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보다 더 행복하다’는 결론으로 수렴되고 있다고 한다. 보수주의자는 주어진 현실과 자조(自助)의 힘을 긍정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는 현실의 결핍과 지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정치가들이 진정 국민의 행복 증진에 관심이 있다면 무조건 베풀기를 약속하기보다 ‘한국인 전체’의 적성과 능력이 어떤 경제 사회 체제에 적합한지부터 연구해야 할 것이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
#보수주의자#흉악범죄#국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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