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좌승희]하향 평준화 불러올 경제민주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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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여야 정치권은 지난 총선에 이어 어려운 경제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신비한’ 처방이라며 경제민주화 기치를 높이 들고 대선 경쟁에 나서고 있다. 작금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대기업 규제는 일자리 부족 초래

첫째, 서구 좌파 정치학자들이 제시하는 개념으로 민주주의가 1인 1표의 형식적 평등은 달성했지만 실제는 경제적 불평등에 따라 실질적 평등이 실현되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적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기업의 의사결정을 1인 1표의 민주적 방식으로 전환해 경영을 민주화하거나 기타 소득이나 부를 평등하게 분배하는 장치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재정·금융 불안, 양극화와 같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서구 선진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지난 반세기를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한 경제민주화에 매진해 왔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두 번째 개념은 애매하기는 하지만 한국의 학계 일부나 정치계가 하는 주장이다. 대기업을 규제하고 중소기업을 우대하며 가진 자에 대한 고율 과세로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를 확충하자는 것이다. 또 수도권과 대도시의 성장을 억제하면서 지방을 우대하는 등 경제사회적 강자를 규제하고 약자를 우대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 사회 지역의 평등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경제민주화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들은 그에 대한 법적 근거로 1987년의 헌법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를 든다.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다면 법이 만들어진 지 20년이 더 지났으므로 우리는 20년 넘게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온 것인데 정치권이 새삼스럽게 화두로 꺼낸 셈이다. 일부에서는 대기업의 경영 민주화나 해체, 보편적 복지를 적극 주장하는 등 점차 그 의미를 서구 선진국들보다도 더 강한 사회주의적 경제민주화로 변질시키고 있다. 심지어 법 조항에 대한 해석의 오해까지 있다.

사실 2항에 있는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는 헌법 개정 당시의 강력한 정부주도 경제운영체제를 민간주도로 바꾸고 노사 평화를 도모한다는 ‘경제 민간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당시 헌법을 개정한 취지는 오히려 균형발전, 적정소득분배, 대기업 규제를 위한 ‘정부 개입의 한계’를 설정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요즘의 강성 경제민주화 주장에 묻혀 아예 빛을 못 보고 있다.

여야 간에 정도 차이는 있으나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내세운 대기업의 순환출자금지, 총액출자제한 부활, 비은행산업 진출 금지, 나아가 경영민주화나 대기업그룹 해체를 하면 어떻게 될까?

수출·제조 대기업들의 국내 투자 감소와 그에 따른 일자리 감소, 국내 중소기업과 서비스 부문에 대한 수요 감소 등을 초래해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양극화현상을 오히려 더 심화시키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투자심리 살리는 게 더 시급

이는 지난 20여 년 동안 헌법 119조 2항에 따라 추진된 대기업 규제 강화 속에 중소기업 육성을 기조로 하는 경제민주화정책이 대기업 해외탈출과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함으로써 오늘날의 양극화를 가져왔다는 경험이 웅변하고 있다.

그동안에도 성장하는 기업에 상대적 불이익을 주는 경제민주화정책으로 기업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을 강화한다면 한국 기업 생태계를 더욱더 하향 평준화시킬 것이다. 수출·제조 대기업들의 국내 투자 기피로 생긴 좋은 일자리 부족과 소위 경제양극화에 직면한 한국경제의 해법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살려내는 데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햐향 평준화#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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