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진실 규명 포기한 ‘권양숙 모녀 13억 원’ 수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0일 03시 0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의 외화 밀반출 의혹을 수사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정연 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은 정연 씨가 미국 뉴저지 주 고급 강변 아파트를 사기 위해 주인 경연희 씨에게 13억 원을 불법 송금한 사실을 확인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는 13억 원의 출처에 대해 “지인(知人)들이 준 돈을 모아 보관해 오던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검찰도 “전액 현금이어서 누구로부터 받았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 자금 출처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않은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비자금 사건에 대해 “저의 집(권 여사를 지칭)에서 부탁해 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재인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2009년 6월 언론 인터뷰에서 “권 여사가 (아이들의) 집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대통령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권 여사에 대해선 입건유예 처분했다. 딸 정연 씨를 기소하는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권 여사에 대한 입건유예나 정연 씨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기소는 자살한 노 전 대통령을 고려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실체 규명을 외면한 채 유야무야 넘어갈 일은 아니다.

권 여사에게 13억 원을 건넨 지인들이 누구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은 달라질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권 여사에게 전달된 돈이 모두 ‘선의(善意)의 제공’이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건넸느냐에 따라 뇌물 수수 혐의가 적용될 여지도 있다. 검찰은 “권 여사가 ‘인간적인 정리상 지인들의 구체적인 신원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검찰이 거액이 오고간 사건을 수사할 때 출처 조사 없이 용처(用處)만 확인한 채 마무리하진 않는다.

검찰은 권 여사가 마련한 돈을 제보자 이달호 씨 형제에게 최초 전달한 ‘선글라스 남성’을 파악했으나 공개하지 않았다. 권 여사의 친척이라고 했을 뿐 자세한 신원은 베일에 가려 있다. 친노(親盧) 세력은 노 대통령이 자살한 직후 검찰과 보수 언론이 억울한 누명을 씌워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공격했다. 노 대통령이 과연 억울한지, 권 여사가 챙긴 거액을 몰랐는지, 검찰은 진실 규명을 포기해 버렸다.
#사설#권양숙#노무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