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국은 김영환 ‘전기고문’ 진상조사 응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일 03시 00분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가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당했다는 전기 고문이 사실이라면 중국은 문명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김 씨는 “중국인들이 5∼8시간 동안 전기봉으로 고문을 해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고 폭로했다. 중국 당국은 김 씨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피멍이 들도록 때리고 7일 동안 잠을 안 재우기도 했다. 김 씨가 체포 19일째인 4월 16일 묵비권을 풀고 조사에 응하자 고문은 중단됐지만 이후에도 책상과 연결된 의자에 앉아 수갑에 묶인 채 잠을 자게 하는 가혹행위가 한 달 동안 지속됐다. 전향한 주사파인 김 씨에게 수십 차례 “북송(北送)해버리겠다”고 협박한 것도 정신적 고문이다.

중국은 1988년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했다. 협약가입국은 고의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고문을 범죄행위로 처벌할 의무가 있다. 지방 성의 고문기술자가 자행한 고문을 중국 정부가 지시했거나 알고도 묵인했다면 국가범죄에 해당한다.

한국과 중국은 24일 수교 20주년을 기념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올 들어서만 4차례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발전시켰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인을 조사하는 방식이나 고문이 폭로된 이후에 한 대응을 보면 협력동반자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은 즉각 진상조사와 가해자 처벌에 나서야 한다. 한중 합동조사를 추진하되 유엔인권이사회를 비롯한 국제기구도 참여하게 할 수 있다.

114일 만에 풀려난 김 씨는 고문 사실을 폭로하면서도 정부의 석방 노력에 감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석방 교섭과 인권을 유린한 고문은 별개의 문제다. 설사 외교통상부와 국가정보원이 김 씨를 석방시키기 위해 중국에 어떤 약속을 했더라도 전기고문 폭로 이후의 대응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 정부가 고문 실태를 파악한 뒤에도 미온적으로 나서니 어제 중국 외교부가 “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했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김 씨는 고문한 사람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나서면 진상조사와 책임자 파악이 어렵지 않다. 중국이 끝내 진상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이 대통령은 다음 달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해야 한다.
#북한인권운동가#김영환#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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