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재순]농촌은 식량안보의 최전방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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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박재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이달 초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농촌 현장을 다니고 있다. 10여 년 만의 가뭄으로 논밭은 물론 농민들의 마음도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는 거북등처럼 갈라졌고 밭은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말랐으며 모를 심은 논도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영농 현장 점검과 긴급대책이 중요하고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5월 강수량은 41mm로 평년(104mm)의 39%에 불과하다. 저수율도 49.8%로 지난해보다 17%가량 적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방울의 물이라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물을 가두고 아끼는 저수와 절수는 물론이고 양수기로 하천의 물을 끌어올리거나 지하수를 개발하는 등 농업용수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뭄과의 전쟁이다.

다행히 모내기는 전국적으로 마무리 단계에 있으나 가뭄이 지속될 경우 벼 수확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달 말쯤 장마가 시작돼야 가뭄이 해갈될 수 있다는데 문제는 집중호우에 의한 홍수 피해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뭄과 홍수로 인한 생산량 감소와 가격 폭등, 수급 불안정 등 식량안보를 걱정해야 할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안보란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안보는 국가와 국민의 존립에 있어 가장 우선해야 할 가치다. 안보가 없으면 국가도, 국민도, 자유와 평화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안보의식 해이는 국가안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식량안보의 중요성과 실체에 대한 인식도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식량안보 수준은 ‘풍요 속의 빈곤’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식량안보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51.4%다. 특히 곡물자급률은 26.7%밖에 안 된다. 쌀 다음으로 소비가 많은 밀은 1% 수준, 옥수수는 5% 미만의 자급률을 보이고 있다. 쌀을 제외하면 모든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셈이다. 쌀은 유일하게 자급이 가능한 품목이자 식량안보의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식량안보의 핵심은 주식의 자급과 직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쌀마저 자급기반이 무너진다면 식량안보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국제 곡물의 수급 불안정과 이상기후에 의한 생산 불안정을 고려한다면 식량 자급기반을 통한 식량안보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자라는 것은 수입에 의존하겠다는 안이한 발상이야말로 식량안보의 가장 위협적 요인이다. 국가안보를 외국에 의존할 수 없듯 식량안보 또한 수입에 의존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가뭄과 홍수 대비 못지않게 식량안보를 걱정하는 것이다.

농촌의 푸른 들판은 식량안보의 최전방이다. 휴전 이후 불안정한 자유와 평화의 오랜 지속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듯 수입에 의존한 위장된 풍요는 농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가안보든 식량안보든 그 출발은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지켜내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이 주는 의미와 더불어 가뭄 속에서 말라죽어가는 벼 한 포기라도 살리려는 농부의 손길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박재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농촌#식량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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