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창현]금융산업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윤창현 객원논설위원·한국금융연구원장
윤창현 객원논설위원·한국금융연구원장
병에 걸려 입원을 했지만 몸이 완전히 나아 퇴원 후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퇴원은 했으나 입원 전과 달리 부분적으로만 회복되는 아쉬운 사례도 있다. 때로는 체질이 바뀌기도 한다.

우리가 경험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럽의 재정위기로 연결되면서 그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융산업의 흐름에 변화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를 맞기 전 금융산업에선 크게 세계화, 자율화, 탈중개화(脫仲介化·disintermediation)라는 세 가지 흐름이 관찰되고 있었다. 세계적 개방을 통한 시장통합 현상이 나타나고 금융기관들이 세계를 무대로 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세계화는 점점 가속화했다. 물론 당시 분위기는 월가를 중심으로 성장한 미국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엄청난 수익을 챙겼고 이 과정에서 기축통화(基軸通貨) 발생국으로서 미국의 위상 자체가 엄청난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미국 중심의 일극적(一極的·monopolar) 세계화가 가속화한 것이다.

미국 중심에서 多極的 세계화로


자율화 내지 규제 완화(deregulation)의 분위기도 중요한 흐름이었다. 시장 중심 금융이 발전하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자율화의 분위기가 조성이 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책감독 당국은 시장, 기관 및 상품 등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금융회사들이 다양한 수익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금융의 탈중개화도 중요한 흐름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일반 상업은행들은 예금을 받아 조성한 자금으로 대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처럼 예금과 대출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자금이 공급자로부터 수요자로 이동하는 현상을 ‘금융 중개(financial intermediation)’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돈이 필요한 기업들이 금융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상품을 발행하고 투자자가 이를 직접 사들이는 방법을 통해 자금이 흘러가는 경우를 직접금융 내지 시장 중심 금융이라 한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금융의 중심이 금융 중개보다는 시장 중심으로 이동하였고 이 현상을 금융의 ‘탈중개화’라 불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흐름들이 상당 부분 바뀔 조짐이 관찰된다. 우선 세계화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미국 중심의 일극적 세계화가 아니라 새로운 지역 맹주들이 등장하는 다극적(多極的·multipolar) 세계화로 바뀌고 있다. 중국이 달러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통해 자국 화폐를 세계 기축통화 반열에 올려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위기 전이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국가들이 지역 맹주를 꿈꾸며 다른 나라의 은행을 사들이는 공격적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현상에 속한다. 그런가 하면 규제 완화 내지 탈규제의 움직임이 반전되면서 재(再)규제(re-regulation) 흐름이 금융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바젤3(은행자본 건전화 방안)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국제결제은행(BIS) 규제와 함께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추가 규제하는 SIFI(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 규제도 시행되고 있다. ‘볼커룰’로 불리는 규제는 금융기관들이 자기자금을 굴려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행위에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 이제 시행을 기다리고 있다.

나아가 최근 시장 중심 금융이 주춤하면서 기관 중심 금융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시장 중심 금융에 치중하던 미국이 힘들어지자 상대적으로 은행 중심 금융이 발달한 독일이 주목받는 분위기 속에서 규제와 통제가 쉬운 기관 중심 금융의 장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금융의 ‘탈중개화’ 흐름이 ‘재중개화(re-intermediation)’로 바뀌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통제 용이한 은행중심 금융 부각


흐름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그럴수록 새로운 흐름을 잘 이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뒤처진 금융산업의 위상과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극적 세계화에서 다극적 세계화로, 탈규제에서 재규제로, 그리고 탈중개화에서 재중개화로 금융의 흐름이 바뀌는 점을 이용해 우리 금융산업과 기관들이 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다면 위기는 기회로 바뀌어 우리에게 큰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금융은 경제에서 피와 같은 존재이다. 피가 막힘없이 잘 돌아야 인체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금융산업이 입원 전보다 더 건강해져서 퇴원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윤창현 객원논설위원·한국금융연구원장 yun3333@paran.com
#동아광장#윤창현#금융산업#글로벌 금융위기#다극적 세계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