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고기정]한중FTA 신중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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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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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어느 일요일 아침, 누군가가 뾰족한 물건으로 차를 박박 긁어놓은 것을 발견했다. 아파트 앞 도로변 주차선 안에 합법적으로 세워져 있었으나 보호받지 못했다. 불과 5m 떨어진 곳에 있는 방범초소의 경비원은 “나는 모른다”고 무책임하게 툭 한마디 던지고 만다. 이 부근에 자주 오는 영업용 택시 운전사는 “범인은 헤이처(黑車·불법 자가용 영업 차량) 기사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자신들이 차를 세워놓을 곳에 주차한 것에 대한 경고라는 것이었다. 불법이 합법을 위협하는 적반하장이다.

그런데 정비소에 차를 맡기니 뜻밖에도 수리비를 받지 않았다. 이미 보험사에 청구해서 다 받아냈다고 했다. 정비소 사장은 “다 방법이 있다”고만 말했다. 작년 지방 도시에서 접촉 사고가 났을 때는 아무리 보험사에 연락해도 “현장에 가기 어려우니 고객이 상대방을 잘 설득해서 수리비를 받으라”는 말만 들었다. 그때는 보험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엄격해야 할 보험료 산정이 이렇게 상황마다 다르니 중국이 세계 2위 자동차 시장이라지만 보험 인프라는 거의 ‘엉망’인 셈이다.

차를 밖에 두기가 무서워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다시 알아봤다. 중국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은 아파트 거주자라고 해도 따로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작년 7월 이사 온 뒤 아직 빈자리가 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에서는 “경비원에게 한 달에 150위안(약 2만7000원)씩 1년 치를 미리 주면 아파트 지상에도 주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편법이라 영수증도 주차허가증도 없다. 지하주차장 한 달 요금은 360위안이다.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이런 일은 ‘평범한 일상’이다. 원칙보다는 변칙, 제도보다는 관행, 법보다는 권력이 우선한다. 사업을 하는 친구는 ‘H.I.C’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Here Is China(여기는 중국이잖아)’라는 뜻이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데 이 얘기를 꺼내는 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다. 양국은 2일 베이징에서 협상 개시 선언을 했다. 이달에 첫 협상을 시작한다.

한중 FTA는 경제적인 의미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 두 나라가 한 시장으로 묶이면 대북 관계에서 중국이 한국 쪽에 더 기울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있다. 미국 중국 일본이 각축 중인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이 절묘한 균형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미국, 유럽연합(EU)에 이어 중국과도 경제동맹을 맺는 유일한 나라가 됨으로써 우리가 전 세계 FTA의 허브가 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나중에 협상 내용이 충실하게 지켜질 것인지 미리 걱정하는 건 괜한 기우일까.

지난주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 씨 사건은 중국이 얼마나 상황마다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나라인지 새삼 느끼게 해주었던 사례였다. 천 씨의 거취는 외국 유학 허용으로 결론나긴 했지만 그간의 과정은 우리가 믿고 있는 보편적 가치와 중국이 주장하는 그들만의 방식 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다. 인권 문제를 정치 쟁점으로 바꾸려고 하기도 했다.

FTA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각종 불확실성을 걷어내기 위해 규범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FTA에서 쉽지 않은 경로를 밟아왔다. 이제 상대는 중국이다. 규칙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일상에서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보니 한중 FTA 협상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한중FTA#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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