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시욱]‘몸싸움 방지법안’ 공포 보류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남시욱 언론인 세종대 석좌교수
남시욱 언론인 세종대 석좌교수
헌정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는 18대 국회가 회기 말에 문제투성이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명 ‘몸싸움 방지법안’은 예산안을 법정기한 안에 통과시키도록 본회의 자동상정 제도를 마련한 점 이외에는 다수결 원리에 입각한 민주주의 기본과 헌법정신을 외면한 시대 역행적인 입법이다.

민주주의 기본 외면한 입법

국회법 개정안은 몸싸움 방지를 명분으로 첫째, 예산안을 제외한 의안에 대한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국회 상임위 등 소관 위원회에 여야 동수의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재적위원 3분의 1의 요구만으로 쉽게 구성되는 안건조정위는 의결정족수를 3분의 2로 함으로써 활동기간인 90일 동안 소수당이 반대하면 어떤 안건의 통과도 실제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90일이라는 긴 조정기간으로 인한 의사진행의 지연도 문제지만 만약 조정위에서 조정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의안이 상임위로 되돌아오는 경우 종래와 같은 폭력사태 소지는 그대로 남는 셈 아닌가.

둘째, 천재지변 또는 국가비상사태나 여야 합의가 없는 한 국회의장이 의안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못하도록 하고,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본회의에서 무제한의 토론(필리버스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필리버스터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없는 한 회기 종료 때까지 계속할 수 있어 회기 중 의안의 통과가 봉쇄된다. 다만 이 경우 다음 회기에서는 지체 없이 그 의안을 표결하도록 해 필리버스터의 약발에 제한을 두었다. 그러나 상임위 단계에서부터 여야 동수로 장기간 의안 조정을 하도록 한 점에서 본회의에서의 필리버스터 허용은 소수당에는 또 하나의 의사 지연 무기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다수당을 위해 새로 도입된 의안의 ‘신속처리제’(패스트트랙)는 지정 요건을 비현실적으로 엄격하게 정함으로써 작동 불가능한 허울뿐인 제도가 됐다. 어떤 의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려면 재적의원 또는 소관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의회정치 풍토와 의석 분포로는 소수당이 반대하는 한 사실상 이 제도는 작동이 불가능하다. 설령 어떤 의안이 어렵사리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된다고 해도 소수정파에 의한 폭력사태의 유발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신속처리 안건의 심사기간을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로 함으로써 의안 통과에 최장 330일(11개월)이 소요되게 하고, 다시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 대상이 될 수 있게 함으로써 ‘신속’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색해졌다. 몸싸움을 없애기 위해 소수당과 다수당에 공평한 새로운 제도를 마련한다고 했으나 국회법 개정안은 균형이 깨져 버렸다. 그리고 다수결의 요건을 60% 이상의 찬성으로 강화함으로써 ‘51%의 의사’가 통하지 않는 민의의 전당을 만들고 말았다.

정부가 국회에 재의 요구해야

문제는 이번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폭력과 파행사태가 과연 해소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질서 준수라는 가치가 여야 간에 공유되지 않는 상황에서 협상에 의한 쟁점법안의 합의 통과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야 극한대립과 몸싸움은 없어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국회 폭력사태와 파행사태의 치유 방법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벌써부터 19대 국회가 ‘불임국회’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 가지 방법은 정부가 헌법상 삼권분립 아래 부여된 권한과 임무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의 공포를 보류하는 것이다. 국회법 개정 조항은 국회 내부 문제에 관한 규정들이 아니다. 넓게는 국민 전체의 이해가 걸린 국가적인 문제이고, 좁게는 법률제안권을 가진 행정부의 역할 수행에 직결되는 문제 아닌가. 정부는 국민 여론을 듣고 자체 판단으로 국회에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남시욱 언론인 세종대 석좌교수
#18대 국회#국회법 개정안#몸싸움 방지법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