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광영]모두의 안전보다 ‘얌체시민’의 인권이 소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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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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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신광영 사회부
여자 사이클 선수 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물차 운전사 백모 씨(66)는 2일 경찰과 사고 현장을 돌아보며 “잠깐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기기를 만지는 사이 이런 일이 벌어져 면목이 없다”고 했다. 덧없고 허망한 후회였다. 평소 ‘DMB 운전’을 즐겼던 그는 전에도 사고를 내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한 전력이 10회쯤 된다고 한다.

DMB를 보느라 전방 주의를 게을리 한 운전 습관에 분노가 치밀지만 그의 25t 화물차를 ‘달리는 흉기’로 만든 데는 다른 원인도 있다.

경찰은 운전 중 DMB 시청을 처벌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통제하면 국민이 수긍하겠느냐’는 반대에 부닥쳐 국회에서 무산됐다. 그 바람에 ‘운전 중 DMB 시청 금지’는 강제력이 없는 훈시조항이 됐다. 지루한 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백 씨로선 DMB 시청을 자제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차에 DMB를 달고 다니는 880만 운전자들의 인식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사이클 선수였던 박은미(25) 이민정(24) 정수정 씨(19)의 허망한 죽음은 몰상식을 ‘기본권’으로 포장하는 어긋난 관용이 낳은 참극이다.

112 거짓 신고를 근절하려는 시도도 국민정서의 벽에 막혀 있다. 경찰이 장난 전화를 한 청소년의 부모를 만나보면 “애들이 장난 전화 한두 번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도리어 큰소리를 친다고 한다. ‘어른 양치기’도 경찰 앞에 당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을 해친 것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냐” “명백한 과잉대응이며 인권침해”라는 식이다.

세간의 시선이 이렇다 보니 경찰도 112 허위신고자를 형사입건할 엄두를 못 냈다. 법원도 10만 원 이하의 벌금만 선고해왔다. 거짓 신고 탓에 경찰의 도움이 절실한 때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의 인권보다 ‘무책임한 자유’가 우선시돼 온 것이다.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선진국은 ‘DMB 운전’과 ‘거짓 신고’를 무자비하게 처벌한다. 영국은 운전 중 DMB를 켜기만 해도 최대 180만 원의 범칙금을 물린다. 미국에선 911 거짓신고자를 징역 3년 또는 최대 2800만 원의 벌금형으로 다스린다. 이들 국가에는 ‘일부의 방종을 단죄하지 않으면 선량한 시민이 억울한 피해를 본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얌체 시민이 활보하는 나라와 무고한 시민이 안전한 나라. 어디가 진짜 인권 국가일까.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DMB#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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