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위용]‘닥치고 무상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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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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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용 교육복지부 차장
정위용 교육복지부 차장
2세 이하 어린아이를 기르는 주부들이라면 최근 몇 달간 한껏 부풀었던 ‘무상보육’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상처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보육비를 지원받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원금이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원금에 돈을 보태야 할 전국 시도들은 돈이 없다며 두 손을 들었다.

이런 황당한 일을 꾸민 이들은 여야 국회의원이다. 그들은 지난해 12월 보육비 지원 규모를 2조8000억 원에서 3조999억 원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지원 대상도 소득 하위 70% 계층에서 모든 계층으로 확대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는 대상자 확대에 따른 보육비 예산을 짜놓지도 못했다.

문제가 지방의 어려운 재정 형편에 그친다면 다행일 것이다. 지방에다 부족한 예산을 지원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무상보육에 화난 민심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왜 무상보육을 확대해도 불만이 쌓이는가,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무상보육은 추진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우선 너무 급하게 추진됐다. 보육비 수혜자가 소득 하위 50%에서 모든 계층으로 확대되기까지 2년도 걸리지 않았다. 얼마나 급했으면 돈을 댈 파트너였던 지자체들의 형편도 살펴보지 않았을까.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혜택을 누리는 무상 보편 보육은 정치권이 갈구하는 이상향이었던 것 같다. 야당은 무상보육이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요술방망이라도 되는 양 틈만 나면 흔들어댔고, 정부 여당은 이에 뒤질세라 보육비를 지원받을 수혜자를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무슨 건설공사 하듯이 밀어붙였다.

정치권은 민의를 반영했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No’라는 대답이 아직도 들린다. “공짜니까 좋다는 반응이 많았을 뿐, 세금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Yes’라고 동의해준 엄마들이 얼마나 됐을까”라고 묻는 주부도 많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정책이다 보니 수혜자가 확대됐음에도 반대편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은 것이다.

이 정책은 가치 공유에도 실패했다. 복지체제를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 조합주의 모델로 구분한 복지학자 괴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은 가족 밖에서 보육을 지원하는 것을 사민주의 체제로 봤다. 사민주의 보육 모델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 최상의 가치를 두고 있다. 근로자들도 이런 가치에 동감하며 월급의 절반을 세금이란 형태의 복지비로 내놓는다.

한국의 보육정책은 외양상 사민주의 모델을 좇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모델의 가치에 충분히 공감하고 복지재원을 마련했는지는 의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탁아소에 맡기기 전에 엄마가 직접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사민주의 모델에 충실한 스웨덴은 여성의 80%가 일자리를 갖고 있는 반면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0%를 밑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복지정책은 한번 내놓으면 없던 일로 되돌리기 어렵다. 정치권이 지난해처럼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있으면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우선 무상보육이 꼭 필요한 실수요자는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지원과 상관없이 적극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시간에 쫓기지 말고 정확한 처방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무상보육 단추를 잘못 끼우면 기초노령연금 등 후속 복지 대책에서 메가톤급 폭풍을 만날 수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제발 실망의 상처를 덧나게 하지 말고 우리 실정에 맞는 복지 모델을 찾아가길 바란다.

정위용 교육복지부 차장 viyonz@donga.com
#광화문에서#정위용#무상교육#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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