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종석]얼룩진 도복과 금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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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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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안녕하세요. 성균관대 법학과 97학번 김병현입니다.”

프로야구 넥센 김병현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성균관대에서 열린 미디어 데이에서 재치 있는 자기소개로 화제를 뿌렸다. 그의 전공이 법학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눈길을 끌었다. “원래 체대에 가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친구들을 많이 사귀라’며 보냈다”고 그 이유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김병현의 교우 관계가 그리 활발했던 것 같지는 않다. “학교 앞까지는 많이 와봤다”는 게 그의 대답이고 보면.

10년 넘게 한국 테니스를 이끌었던 이형택. 건국대 영문학과 94학번인 그도 “영문도 모르고 대학에 간 것 같다”고 자주 쓴웃음을 지었다. 영어 장벽에 진땀 흘릴 때가 많았던 탓이다. 억울한 판정이 나와도 외국 심판에게 항의 한번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기 일쑤였다.

한국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김병현과 이형택은 누구나 그랬듯이 학창시절 훈련과 경기에만 몰두하느라 학업과는 벽을 쌓았다. 맹목적인 성적지상주의에 휩싸여 책상 앞에 앉을 시간에 공이라도 한 번 더 던지고 쳐야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공부하는 운동부가 강조됐다. 각종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됐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여전히 성과나 결과에 집착하는 국내 엘리트 스포츠 현실과 괴리를 빚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학생들도 고교 때부터 직업교육을 하고 있다. 우수 선수가 굳이 모든 과목을 다 배워야 하는가.”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나마 김병현과 이형택은 다양한 전공을 고를 수 있었지만 2000년부터 체육 특기자들은 대학에서 동일계열(체육 전공)만 지원하게 됐다. 특기를 살리고 입시 비리를 막을 의도였지만 전공 선택의 자유와 학습권 보장의 취지와 상충된다는 목소리가 많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초중고교 스포츠를 위축시킨 악수(惡手)라는 평가도 있다. 어린 선수들의 다양한 꿈을 제한할 수 있어서다.

타이거 우즈, 로레나 오초아, 마이클 조던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스포츠 스타들은 대학 중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찌감치 프로에 뛰어들어 부와 명예를 노릴 의도와 함께 운동선수라고 봐주지 않는 엄격한 학사 규정을 따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운동선수의 출석이나 학점을 예전보다 꼼꼼히 따지고 있기는 해도 대학 입학만 하면 졸업은 보장되는 편이다. 실제로 특정 선수를 위한 원격 수업이나 e메일 과제 등은 특혜 논란을 빚었다.

지난 주말 경주 토함산 기슭의 동리 목월 문학관에 들렀다.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박목월의 소상한 경력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문단의 거목이 후학을 기르는 데 박사학위 소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요즘 세태와는 달랐다. 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연보 2011’에 따르면 4년제 대학(교육대 산업대 제외) 전임강사 이상 정규직 교수 5만8104명 중 박사학위 소지자는 84.3%에 이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사학위 취득에 무리수를 두는 스포츠 스타가 끊이지 않는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대성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시비는 한국 스포츠와 교육의 난맥을 드러낸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여기에 비뚤어진 개인 욕망이 투영되면서 문대성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순백의 도복에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얼룩을 남겼다. 오랜 세월 마치 창과 방패처럼 돼버린 공부와 운동. 그 해묵은 실타래를 풀어버릴 후련한 돌려차기가 정말 보고 싶다.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kjs0123@donga.com
#김병현#학력#가방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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