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이것만은…/간호섭]세상에 길이 남을 ‘나만의 다이아몬드’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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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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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요즘 들어 ‘삶을 설계한다’, ‘삶을 디자인한다’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삶이 물리적으로 연장된 것도 있겠지만 하나뿐인 자신의 삶을 멋지고 풍요롭게 누리고 싶은 욕망이 큰 게 아닐까 싶다.

필자는 전공인 패션뿐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모든 디자인을 사랑한다. 어려서부터 유독 관심이 많았던 그릇과 보석에 대한 안목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편이지만 특히 패션의 마무리를 짓는 원색이 아름다운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 기본 보석과 페리도트, 가닛, 아쿠아마린, 애미시스트 등의 연녹색, 자주색, 하늘색, 보라색의 팬시한 색감과 영롱하고 투명한 결정체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꿈꾸게 하는 판타지가 숨 쉬고 있는 것 같아 보석을 좋아한다. 이집트 시대의 유물부터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영국 튜더왕조의 헤리티지 주얼리, 아르누보 아르데코 시대의 앤티크 주얼리, 그리고 현재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쇼메나 카르티에 같은 보석상의 초기 작품들을 공부하고 접하면서 경험을 통해 패션에 무한한 영감을 제공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석에 심취한 적이 있다.

그중 다이아몬드를 좀 더 심도 있게 알게 되면서 하나의 원색이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가 되는 과정 또한 한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다이아몬드를 완벽하게 하기 위한 조건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는데 바로 4C(Carat, Cut, Color, Clarity)다.

첫 번째는 캐럿(Carat)이다. 중량을 뜻하며, 다이아몬드의 크기가 얼마만 한가를 말한다. 하지만 중량, 즉 다이아몬드의 크기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타고나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디자이너로서의 천재성은 타고나야 한다. 비단 예술과 디자인 분야뿐 아니라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도 천재성을 가진 사람은 그저 타고난다. 유학생활을 돌이켜보더라도 수업시간에 늘 늦고 결석을 많이 하는데도 과제의 결과는 놀라웠던 친구가 한두 명씩 꼭 있었다. 교수가 돼 학생을 가르칠 때도 몇 가지 알려주지 않았는데 작업의 완성도가 한 주 한 주 다르게 급성장하는 학생들을 가끔 마주하곤 한다.

두 번째는 컷(Cut)이다. 깎아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학생들에게는 배움의 과정 자체가 커팅 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 사회인들에게는 직장생활, 여러 가지 인간관계를 통해 부딪치며 스스로 체험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같은 캐럿의 다이아몬드라도 커팅 과정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에 따라 완성품의 가치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커팅된 정도까지만 빛을 발할 수 있다. 길고 힘든 커팅 과정을 끝까지 견뎌냈다면 그 누구보다도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게도 통하는 진리다.

세 번째는 컬러(Color), 즉 색깔이다. 사람마다 풍기는 향기가 다르고 지닌 색깔도 다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모두 각자 다른 꿈을 꿔왔다. 다이아몬드는 순백의 푸른빛을 띠든 핑크, 옐로, 블랙을 띠든 상관없다. 각자의 컬러에 따라 쓰임새나 디자인의 콘셉트를 달리하면 될 뿐이다. 그러니 어떤 컬러가 더 좋다고 아무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대학을 들어가든지, 어떤 전공을 택하든지,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지 상관없이 가장 자기다운 것,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본인만의 것을 해야 즐겁고 남의 것을 흉내 내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클래러티(Clarity), 즉 투명도다. 다이아몬드는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큰 돋보기나 현미경 같은 기구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 아무리 큰 캐럿에 정교하게 커팅된 멋진 컬러의 다이아몬드라 해도 그 안에 불순물이 끼어 있거나 흠집이 있다면 완벽하다고 할 수 없으며 상품의 가치를 잃고 만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타고났고 좋은 학력과 경력에 자신만의 캐릭터를 분명히 갖추었더라도 인간성이 불투명하다면 성공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에게 되묻고 싶다. 나만의 다이아몬드를 찾았는지. 나의 캐럿을, 중량을 남과 비교하지는 않았는지, 그러면서 주눅이 들거나 좌절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하지만 아무리 큰 캐럿이라도 깎지 않은 원석은 뿌연 돌덩이에 지나지 않음을 안 순간 나는 또 되돌아본다.

그 커팅의 과정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끊임없이 내게 질문한다. 그럼 나만의 색깔을 찾았는지를. 조금 앞서나간다 하여 진실된 색깔을 보여주기에 앞서 빛을 조금이라도 발하기 위해 그것을 덮어두려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자신 안의 싸움이라고 여겨 내 주변의 많은 인연과 배려를 뿌리치지는 않았는지.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과연 나는 어떤 다이아몬드를 한 바구니 채울 수 있을지 계속 질문하고 고뇌하련다. 그 질문과 고뇌를 계속할수록 그것은 내게 더 단단한 결정체로 남겨져 빛을 발할 것이라고 느낀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교수
#간호섭#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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