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형삼]통진당 종북 노선의 뿌리

  • Array
  • 입력 2012년 4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이형삼 논설위원
이형삼 논설위원
“주사파가 깊이 침투해 있다. 주사파는 북의 지령에 의해 움직인다. 학생운동 리더 대부분은 주사파이며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이들도 있다.” 1994년 7월 박홍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배후’ 발언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운동권은 “근거를 대라”고 추궁했지만 박 총장은 운동권 출신들이 신부(神父)인 자신에게 고해성사한 내용을 공개할 수 없었다.

당시 한총련 간부는 진위를 묻는 필자에게 “우리는 칸트 철학이든 주체사상이든 고금의 다양한 사상을 학술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주적’ 조직이다. 무슨 배후의 지령에 따라 줏대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공안당국자는 “북한과 ‘단선연계(單線連繫) 복선포치(複線布置)’된 것”이라며 정색했다. 상위 조직원이 여러 하위 조직원을 두되 상-하 조직원만 일대일로 접촉하고 하위 조직원끼리는 서로 알 수 없게 차단하는 지하조직 규율. 그래서 북과 연결된 상위 조직원 외엔 조직의 실체를 모른다는 의미였다.

‘시뻘건 핏빛 낙동강을 등지고 눈물을 곱씹으며 돌아간 조국해방전사들의 투혼이 우리의 심장에 강물 되어 굽이친다.’ 1994년 2기 한총련 출범식 선언문의 한 구절이다. 얼마 후 김일성이 죽자 그를 ‘미제의 식민지로 전락할 뻔한 조국을 수호한 영장,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킨 지도자’로 떠받든 유인물이 배포됐다. 5년 전에 동유럽 공산권 붕괴를 지켜봤던 많은 학생은 NL(민족해방)계 주사파의 친북 행각에 실망해 돌아섰다.

주사파 내부에서도 이탈자가 속출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운동권에서 활동한 한 이론가는 “주체사상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지닌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강조하는데, 수령론과 후계자론까지 체화한 교조적 북한 추종은 운동가의 자발적 창조적 사고능력을 저해한다”며 핵심을 짚었다.

필자가 18년 전의 취재수첩을 뒤적인 건 빛바랜 ‘NL 주사파’의 재등장 때문이다. 19대 국회 원내교섭단체를 노리는 통합진보당(통진당)의 주류가 1980년대 운동권의 NL계 경기동부연합 인맥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낳았다. 당 지도부와 총선 후보 중 주사파 민혁당 등 북한의 지하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전향하지 않은 사람이 여럿이라는 폭로가 뒤따랐다.

노수희 범민련 부의장은 통진당과 민주통합당의 야권연대 성사를 지원한 뒤 평양으로 날아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쓴 조화를 바쳤다. 지난 주말 범민련은 “4·11총선에서 정당투표는 통진당으로 몰아주자”는 성명을 냈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는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를 모른다고 했고 조국 서울대 교수는 경기동부연합이 ‘NL 비(非)주사파’였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경기동부연합 출신을 비롯한 NL계는 통진당 전신인 민노당의 당권파였고 이들의 노골적 종북(從北) 노선이 내부 갈등을 촉발해 2008년 노회찬 심상정 씨 등의 탈당 사태가 불거졌다. 민노당 당직자들이 간첩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통진당은 북한의 6·25 남침을 인정하지 않고 북의 3대 세습과 탈북자 북송에 침묵하지만 종북 의혹을 제기하면 ‘색깔론’이라고 역공한다. ‘단선연계 복선포치’된 탓에 배후의 실체에 눈 감고 귀 막은 걸까. 역설적으로 민간인 불법 사찰과 김용민 막말 파문이 종북세력을 살렸다. 그들에게 집중되던 조명이 청와대와 ‘나꼼수’로 옮겨갔다. 모처럼 찾아온 종북 공개 검증의 기회가 사라졌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오늘과내일#이형삼#통합진보당#종북#주사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