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35>‘기단이 높은 집’ 우복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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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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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제공
상주시 제공
우복종택이 자리한 경북 상주시 외서면 우산동천은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1563∼1633)가 38세 되던 해 내려와 살던 곳이다. 그 후 영조가 남북 십리, 동서 오리의 땅을 하사하자 그의 5대손인 정주원이 우복을 기념하여 지은 집이다.

옛 사대부가는 집을 지을 때 항상 덕망 있는 선조의 위업을 빌렸다. 자기가 지은 집이라 해도 항상 조상의 음덕으로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겨울철에 북서풍이 심한 이 지역의 기후에 맞게 안채는 겹집 ‘ㄱ’자로, 그 옆에 ‘ㅣ’자로 곁채를 마련했고, 다시 트여 있는 부분에 전면 다섯 칸, 측면 한 칸의 사랑채인 ‘산수헌(山水軒)’을 배치했다. 그래서 건물 전체로는 튼 ‘ㅁ’자를 이루고 있다.

산수헌은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두 단의 기단 위에 앉아 있는데 기단의 높이가 1.2m에 가깝다. 특히 경사지에 있어 그 모습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우람해 보인다. 사랑채뿐만이 아니라 안채의 경우도 기단이 높다. 상주지역 사대부가의 특색 중 하나는 산등성이에 있든, 평지에 있든 모두 기단이 높다는 것이다. 집의 위엄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독 이 지방의 유림들만 독불장군일 리는 없다. 당시의 건축법은 ‘성현들이 하던 대로’라는 묵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수와 낙동강 유역의 범람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있을까? 상주와 안동은 반원을 그리며 흐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안동이 낙동강의 원 안에 자리하는 반면 상주는 바깥에 자리한다. 자연히 홍수가 났을 때 상당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연간 강수량도 1050mm로 낙동강 유역의 다른 지역보다 약 50mm 많다. 그러나 상주지역은 깊은 침식지형이고, 사질토라 물빠짐이 좋다. 이 지역이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많은 것도 그 이유다. 단순히 홍수피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더욱 중요한 원인은 눈이다. 상주지역의 적설량은 전국 최고를 기록할 때도 많다. 비는 금방 빠진다. 그러나 눈은 지속적으로 쌓여 있다. 이 적설에 대비한 가옥 형태가 바로 기단을 높이는 방법이다. 눈이 많이 오면 마당이 아니라 연결된 기단을 통해 채를 드나든다. 산수헌의 높은 마루에서는 솟을대문 너머로 노악산, 천봉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이 내리는 겨울, 이 마루에서는 온 우주가 고요할 것 같다.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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