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미 합의 보름 만에 휴지조각 만드는 북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북한이 미국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합의한 지 보름 만에 장거리 로켓 발사 계획을 공표했다. 북한은 어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자체의 힘과 기술로 제작한 실용위성 ‘광명성 3호’를 쏘아 올린다”고 밝히고 발사 날짜를 다음 달 12∼16일로 예고했다.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4월 15일) 주간을 맞아 세계를 상대로 ‘미사일 쇼’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즉각 “지난달 북-미 합의사항과 모순되는 매우 도발적인 계획”이라고 규정했다. 식언(食言)을 반복하는 북한과 대화와 협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2차례 핵실험 직후 채택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와 1874호에서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행위의 중지를 요구했다. 북한은 평화적인 과학기술 운운하면서 인공위성이라고 강변하지만 사거리가 6700km인 3단계 로켓의 앞부분에 탄두를 달면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된다. 탑재물이 인공위성인지, 미사일 탄두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기지를 발사대로 지정함으로써 2000년부터 건설을 시작한 두 번째 ICBM 기지가 완성됐음을 알렸다. 새 미사일 기지는 영변 핵시설에서 7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이 기지는 정밀 타격이 어려워 탄도 미사일을 쏘기에 최적의 위치라는 것이 정보기관의 분석이다.

북한이 미국의 24만 t 식량 지원을 조건으로 비핵화 초기 조치에 합의해놓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결심한 것은 ‘강성국가 진입’과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를 대내외에 과시하겠다는 의도다. 1998년 김정일의 권력승계 완료 직후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음 달 중순까지는 아직 한 달 정도 남아 있는 만큼 한국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이번 발사를 막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50여 개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이 참석하는 핵안보정상회의가 9일 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의 어제 발표에는 이번 회의를 앞두고 자신들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계산도 있어 보인다. 김정일 부자의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당·군·정 지도부가 총출동해 연일 대남 군사도발을 위협하는 북한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아랑곳없이 미사일 도발을 하면 고강도 제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북한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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