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29>‘쌍둥이 정자’ 선교장 활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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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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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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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래정(活來亭)은 강원 강릉시 경포호수에 있는 선교장의 정자다. 선교장이라는 이름은 배다리를 놓아 호수를 건너다녔다는 데서 유래하는데, 효령대군의 11세 손인 무경 이내번(茂卿 李乃蕃·1703∼1781)이 지었다.

조선시대 상류 사대부 집의 전형적인 주택인데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은 동판을 이어 차양을 만들었으며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지어 준 것이다. 그만큼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손님이 드나들던 당대의 명가였다.

선교장 터를 이루는 산줄기는 대관령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줄기가 시루봉을 만들고 다시 경포대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부드럽고 완만해진 능선이 선교장 뒤편으로 흘러 청룡과 백호를 이룬다. 아흔아홉 칸의 집인데도 정남쪽의 시원하고 탁 트인 방향을 택하지 않고 남서향으로 자리한 것은 백호의 끝자락을 안대(案對)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청룡의 끝자락에는 활래정이 있다. 활래정이 발을 담그고 있는 너른 연지는 ‘기(氣)는 물과 경계를 이루며 머문다’는 풍수의 경구에 부합하는 자리이다. 활래정은 거기에서 다시 청룡의 기세를 보완하고 있다. 집과 산세를 따로 보지 않고, 건축은 자연에 기대고 자연의 모자람은 다시 건축으로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명당은 명당이 된다. 원래 명당이라는 것은 없고, 예로부터 명당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었다.

활래정이라는 이름은 주자의 ‘관서유감’에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물(爲有源頭活水來)”이란 구절에서 따왔다. 활래정은 얼핏 보면 ‘ㄱ’자 집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각각인 두 채를 맞벽으로 건축한 집이다. 즉 남쪽의 누마루채와 북측의 온돌방채가 이어진 평면인 것이다. 지붕의 구조도 독립적이다. 이런 쌍둥이 집은 아주 드문 경우다.

이렇게 활래정이 쌍둥이로 지어진 것도 역시 청룡의 지세가 약하고 짧은 것을 보완하려는 풍수상의 이유다. 과연 두 개의 팔작지붕이 ‘ㅡ’자와 ‘ㅣ’자로 독립적이어서 연지로 수그러드는 청룡이 다시 바짝 고개를 쳐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내의 기능상으로는 온돌방채에 붙은 넓은 복도로 두 채를 연결하고 있고, 다시 시각적으로 건물 외부로 쪽마루를 두어 계자난간을 둘러서 한 채처럼 보이고 있다.

풍수적인 의미도 찾고, 기능적인 해결도 이루는 동시에 시각적인 통합도 꾀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정자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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