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꼼수가 정수를 이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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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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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사회부장
하종대 사회부장
1994년 필자가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 출입할 때 일이다. 검찰이 갑자기 일선 검사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복도에 차단문을 설치했다. 출입기자들이 “취재통제를 위한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시하자 검찰 측은 “검사의 신변 안전을 위한 것으로 출입기자는 얘기하면 언제든지 열어준다”고 안심시켰다. 대학생들이 검사 방까지 들어와 화염병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해 취한 조치라는 해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결과는 우려대로 출입기자에 대한 철저한 취재 통제였다. 방문 취재는 부장검사 이상 사무실로 제한됐다. 일선 검사 방은 전화로 사전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가물에 콩 나듯’ 사적으로 친밀한 검사에 한해 가능했다. 검찰이 핑계로 삼았던 화염병 투척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차단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꼼수란 바둑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두 대국자가 두는 최선의 수가 정수(正手)라면 꼼수는 일종의 속임수다. 꼼수는 정수와 달리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곧바로 패배로 이어지거나 치명상을 입는다. 꼼수를 두는 사람은 이 점을 노린다.

하지만 꼼수에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상대가 꼼수의 허점을 알고 제대로 대응하면 꼼수를 쓴 사람이 되레 치명상을 입는다. 꼼수의 부메랑인 셈이다.

최근에 나경원 전 의원 측이 보여준 모습도 일종의 꼼수다. 나 전 의원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 당시 시사IN의 주진우 기자가 남편 김재호 판사의 기소 청탁 의혹을 제기하자 “남편은 기소 두 달 전 이미 미국 유학을 떠났다”며 마치 결코 사실일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얘기했다. 이어 보좌관을 시켜 주 기자를 고발하고 형사처벌을 받게 하려 했다. 하지만 수사검사인 박은정 검사의 진술서가 공개되면서 이는 물거품이 될 상황이다.

나아가 이 꼼수가 부메랑이 되어 나 전 의원 부부를 겨누고 있다. 나 전 의원은 사태가 여의치 않자 최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판사는 거꾸로 명예훼손 혐의까지 받고 있다. 처음부터 무리수를 쓰지 않았다면 이런 난처한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 전 의원 부부는 진실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옳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돈봉투 사건에 대한 검찰의 조사도 ‘꼼수 수사’라는 뒷말이 많다. 비리를 덮으려는 정치권과 검찰의 미온적인 수사로 진실이 은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때 자주 사용되는 검찰의 꼼수는 ‘유달리 엄격한 증거주의’다. 수사팀의 한 검사가 사표파동을 일으킨 것도 ‘정도(正道)수사’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꼼수는 주로 권력이나 재력, 지식의 힘을 가진 자가 사용한다. 꼼수에 당하는 사람은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로 꼼수를 사용했다가는 되치기당하기 쉽다.

지난해 4월 말 시작한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인기몰이를 하는 것은 이 땅에 여전히 꼼수를 쓰는 세력이 적지 않고 이로 인해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믿는 사회구성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꼼수에 대한 철저한 법적, 제도적 응징이 필요하다. 정수를 쓰는 사람이 정당한 이익을 얻는 사회가 돼야 한다. 꼼수를 쓰는 사람은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쪽박을 차거나 피박을 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부정확하고 편파적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은 ‘나꼼수’가 더 이상 ‘존재의 가치’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하종대 사회부장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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