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과 나경원의 불출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9일 03시 00분


나경원 새누리당 전 의원이 어제 4·11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다시 온갖 거짓 음해와 선동이 난무하고 있다. 당 일각에선 이를 빌미로 저를 끌어내리려 한다”며 정치적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남편인 김재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의 기소청탁 논란이 불거지면서 ‘자진 낙마’의 수순을 밟은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작년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 전 의원은 좌파 진영의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연회비 1억 원짜리 피부과 출입 의혹은 조사 결과 허위로 확인됐다. 장애인 딸을 치료하면서 9개월 동안 550만 원을 쓴 것이 전부였다. 허위사실 유포로 상대 후보를 흠집 내려는 악의적 공세를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여론도 조성됐다.

그러나 ‘나꼼수’가 서울시장 선거 때 제기한 김 판사의 기소청탁 의혹은 미심쩍은 대목이 많은 게 사실이다. 경찰 조사 결과 김 판사가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확인됐다. 박 검사는 전화 내용을 “청탁으로 느꼈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제출했다. 박 검사가 후임인 최영운 검사에게 ‘포스트 잇’을 붙여 사건 기록과 함께 김 판사의 청탁 내용을 전달했다는 진술도 새로 나왔다. 자세한 사건 경위는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나꼼수의 폭로를 거짓 음해로 몰아붙이기에는 진술 정황이 너무 구체적이다.

나 전 의원의 친일행적 의혹을 제기한 누리꾼은 대법원에서 벌금 700만 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누리꾼의 허위사실 유포가 유죄라고 해서 김 판사의 기소청탁 논란 자체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나 전 의원 측이 ‘나꼼수 프레임’에 걸려들었다고 볼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 탓만 할 사안은 아니다. 김 판사의 통화 내용은 법관 윤리에 합당한 것은 아니었다.

나 전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먼저 불출마를 하든 공천 결과를 기다리든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汎)친이계인 데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나 전 의원이 앞장서 공천에 불이익으로 작용했다는 항변이다. 하지만 서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강남 피부과에다 기소청탁 같은 악재가 이어져 당으로서도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다만 나 전 의원을 내친 도덕성 잣대가 새누리당의 공천 전반에 걸쳐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은 말로만 쇄신 운운하지 말고 공천 과정에서 진정한 쇄신 의지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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