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용]가격 공정성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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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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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산업부 기자
박용 산업부 기자
마케팅 전문가인 세라 맥스웰 미국 포덤대 교수는 가격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는 ‘철물점에서 눈을 치우는 삽을 1만5000원에 팔다가 2만 원으로 올렸다’는 내용을 알리고 실험 참가자들의 반응을 물었다. 69%의 응답자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엔 ‘폭설이 내렸을 때 철물점이 가격을 올렸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자 불공정하다는 응답이 86%로 치솟았다.

맥스웰 교수의 ‘철물점 실험’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거품 가격 논란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공정성 기준에 어긋나지 않으면 가격을 문제 삼지 않는다. 심지어 불편도 감수한다. 백화점의 수입 명품숍 앞에 긴 줄을 서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불공정하다고 느끼더라도 사회적으로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으면 이를 감수하는 착한 심성도 갖고 있다.

하지만 폭설 속 철물점의 가격 인상처럼 사회적 공정성에 어긋나는 행위에는 분노가 폭발한다. 특정 지역에서 더 비싸게 판다거나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소비자를 기만한다고 생각하면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

최근 자동차, 아웃도어 의류, 화장품, 와인, 담배 등 수입품부터 쇠고기까지 이어지는 가격 논란의 이면에도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소비자들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관세가 내렸는데도 수입차나 수입와인 값은 그만큼 내리지 않았다거나 육우 송아지 값이 1만 원으로 폭락했는데도 고깃집 메뉴판은 그대로라고 화를 낸다. 분노가 증폭되기 시작하면 원가나 유통 구조, 브랜드 가치를 설명한들 먹히지 않는다.

가격 논란의 중심에 선 한 기업 관계자는 “브랜드 가치, 생산 구조, 원가 등을 설명해도 믿지 않으니 양치기 소년이 된 느낌”이라며 “도대체 비싸다는 기준이 무엇이냐”며 억울해했다.

담합 등의 불공정 거래가 없었는데도 소비자들의 불만이 빗발친다면 기업들은 과거의 행적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공정성의 덫을 헤쳐 나오는 해법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명성과 ‘이 회사는 절대로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소비자의 믿음뿐이다. 비싼 값을 받아도 평소에 명성과 신뢰를 쌓아놓은 기업에는 소비자의 분노가 덜 향한다.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는 정부의 감시자 역할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나 정치권의 말 한마디에 기업들이 가격을 줄줄이 내리고, 시장이 좌지우지되는 건 건강하지 못하다. 가격을 잡겠다고 칼자루를 잡고 휘두르다보면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시장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질 수 있다.

“오래된 옛날 공정한 가격을 완성한 유토피아가 있었다. 이곳에서 가격은 모든 기업의 평균 생산비용에 표준 마진이 추가된 금액에 따라 결정됐다. 생산비는 달라도 가격은 일정하게 유지됐다. 구매자들은 생산자의 회계장부를 검토하고 가격 결정에도 참여했다.”

맥스웰 교수가 저서 ‘가격 차별의 경제학’에서 소개한 이 유토피아는 옛 소련이었다. 그는 가격 공정성에 사로잡힌 공무원들이 가격 결정권을 갖게 되면서 시장과 소비자들이 소외됐다고 지적했다. 공급은 수요와 상관없이 이뤄졌고 제품은 늘 부족했다. 암시장이 횡행했다. ‘유토피아 소련’은 결국 무너졌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적정 가격 논란 속에서 ‘공정 가격의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도 경계해야 한다.

박용 산업부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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