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성욱]과학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 Array
  • 입력 2012년 2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서양의 우스갯소리 중에 “과학관에는 평생 세 번 간다”는 얘기가 있다. 어릴 때 한 번 가고, 아버지가 돼 아이 손을 잡고 또 가고, 할아버지가 돼 손자와 함께 한 번 더 간다는 것이다. 과학이 일반 성인들의 삶과 얼마나 유리돼 있는가를 풍자한 얘기다. 외국이 이런데 우리가 어떨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된다. TV에서는 현란한 춤사위와 예능프로가 끊이지 않는데, 사이언스TV에 채널을 고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과학문화, 과학 대중화 사업 대부분은 세금이 들어가는 국가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같은 기관이 생활과학교실, 청소년과학탐구대회, 과학기술앰배서더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문화 활동이 정부 주도 사업으로 정착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73년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박정희 정권은 ‘전 국민의 산업전사화’ ‘전 국민의 기술자화’ ‘전 국토의 작업장화’를 내건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출범시켰다. 과학계는 이에 부응했고, 심지어 “과학으로 유신을 다짐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 과학화 운동을 추진하는 주체로 과학기술후원회를 개편해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을 설립했고, 진흥재단은 청소년을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 보급, 주부를 대상으로 한 과학강좌 사업, TV와 라디오를 이용한 과학프로그램 홍보 등을 담당했다. 이 진흥재단이 과학문화재단으로, 그리고 최근 과학창의재단으로 바뀌면서 맥을 이었다.

기후변화 시대엔 시민참여 중요

당시 이런 프로그램은 과학에 관심을 가진 저변을 넓혀 우수한 과학 인재를 확보하고, 무지와 미신을 타파해 과학적 세계관을 보급한다는 과학 풍토 조성이 취지였다. 그렇지만 전 국민의 과학화라는 슬로건은 ‘전 국토의 요새화’ 같은 북한의 슬로건과 너무나 흡사했다.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에서 과학자들은 과학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새마을운동 같은 정권의 정당화를 위한 홍보에 동원됐으며, 주어진 일정에 따라 과학관을 의무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학생들처럼 국민은 과학기술을 위해 동원됐다.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동시에 시들해졌지만 그 유산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과학문화 속에 남아 있다. 국민을 교육하겠다는 관 주도의 사업들, 전시성 행사를 위한 과학자와 국민의 동원, 과학의 확실성과 기술의 유용성을 전파해야 한다는 신념은 1970년대 과학화 운동의 유산이다. 학술적으로 볼 때 이런 정책은 시민이 결핍하고 있는 지식을 과학자가 채워 준다는 ‘결핍모형’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서구에서는 이런 결핍모형이 1세대 과학대중화 사업의 실패한 모델로 오래전에 폐기됐고, 이후 2세대 ‘대화모형’을 거쳐 지금은 3세대 ‘시민참여모형’을 시행 중이라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과학의 확실성과 기술의 유용성만을 교육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담고 있는 현대 과학기술의 문제들, 특히 다양한 종류의 기술 위험에 취약하다. 시민들이 위험을 느끼는 방식이 전문가들이 위험을 계산하는 것과는 판이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과학을 교육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집할 경우 미국산 쇠고기, 유전자변형식품, 원자력 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거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숱한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기후변화 시대에 걸맞은 과학문화는 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참여를 확대하고, 교육과 동원이 아니라 대화와 참여에 근거하고, 과학을 통한 계몽보다는 불확실성을 담은 문제를 예비적으로 대처하는 시민참여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최근 2013년부터 시행되는 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과학문화도 중요한 항목으로 거론된다. 특히 과학문화에 과학 대중화와 홍보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성찰적인 신규 정책을 강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는 바람직한데, 문제는 지금까지 과학문화 사업을 담당한 정부 산하 주체들이 이런 사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조직은 자신들이 일을 해오던 루틴(routine)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과학문화나 대중화 사업을 해오던 주체는 아직도 1970년대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官주도 ‘동원 교육’서 벗어나야

일본은 2001년 사회기술연구개발센터(RISTEX)라는 독립 기관을 만들어 이를 주축으로 참여, 소통, 융합에 입각한 시민 참여 과학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으며, 오사카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 ‘과학기술과 사회’나 과학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원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런 활동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재앙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토대가 되고 있다.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이 시작되는 2013년부터는 관 주도, 동원, 일방적 교육, 확실성과 유용성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진할 새로운 조직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시점이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