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재벌 ‘글로벌 汚名’ 자성하고 스스로 개혁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한국 기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글로벌 오명(汚名)을 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가족경영 중심의 재벌 지배구조를 꼽았다. 재벌이 경영권을 2세들에게 넘겨주고 세금을 포탈하며, 가족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회사 자산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그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었던 북한 변수에 대해서는 “작년 김정일 사망 이후 주가지수와 환율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으면서 설득력이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우리 대기업이 매출과 순이익 등 실적에 비해 주가가 낮게 형성되고 있는 것은 불투명 경영 탓이 크다. 공시를 게을리 하고, 주주를 무시하고, 권한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총수의 전횡은 한국 기업의 낡은 관행이다. 총수는 평균 10%에 못 미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총수의 자녀는 일감 몰아주기, 비싸게 사주기, 고배당, 주가 올려주기 등으로 ‘세금 없는 부(富)의 대물림’을 했다. 다국적 증권사 크레디리요네(CLSA)는 2010년 아시아 기업지배구조 조사에서 한국을 인도네시아 필리핀에 이어 꼴찌에서 3번째에 올렸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경제 민주화나 재벌개혁 바람도 대기업이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대기업들이 국내 신용평가사에 등급 상향을 압박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해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의 기업 등급 상향조정 건수가 하향 조정보다 3.4배 많았던 것은 상당 부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자유롭고 원활한 정보의 공유는 시장경제의 ABC다. 기업평가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정보를 왜곡하는 것은 반(反)시장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낙후한 지배구조와 불투명 경영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반기업 정서가 확산할수록 한국은 기업 하기 힘든 나라라는 낙인이 찍혀 투자가 해외로 빠져나가기 십상이다.

한국은 세계 9위의 무역대국이다. 대기업 주도로 이뤄낸 성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대기업 내부의 개혁이 절실하다.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대기업에 이익이 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같은 부끄러운 말이 사라지면 재벌기업의 주가와 기업 가치도 뛰어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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