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소영]‘日 31년 만의 적자’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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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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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일본이 3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2011년 일본의 무역수지는 2조4927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고 무역수지에 소득수지, 서비스수지, 경상이전수지 등을 합친 경상수지도 크게 감소했다. 수출 왕국 일본의 침몰 소식에 만성적인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던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는 내심 반기는 듯하다. 한국도 작년 대일 무역 적자가 급격히 감소했고, 만성적인 대일 무역 적자시대가 종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내는 듯하다.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첫째, 엔화 강세로 인한 가격 경쟁력 상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쳐 미국, 유럽의 재정위기가 진행되면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나타나 엔화 강세가 진행되고 일본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해 무역수지 적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둘째, 지난 수십 년 동안 일본은 자동차, 가전제품, 반도체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을 펼치며 지속적인 무역수지 흑자를 이루었으나 이제 일본 기업들이 다른 기업들에 추월당하며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셋째,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력 생산의 화석원료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해 수입이 증가했고, 일본 내 제조공장이 파괴돼 부품 조달이 어려워짐에 따라 수출이 부진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진-원전사고로 무역수지 급감

전부 일리가 있는 해석들이다. 하지만 사실 일본의 무역수지, 경상수지 급감 현상은 일본의 지진과 원전사고가 발생한 직후 바로 예견할 수 있었다(개인적으로는 작년 봄 필자의 대학원 수업 때 언급했다. 기억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역사적으로 큰 재해, 전쟁 등을 겪은 국가들은 무역수지, 경상수지가 단기적으로 급감하는 현상을 경험했다. 같은 일본의 예를 들어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일본은 최악의 피해를 봤다. 주요 항구였던 요코하마는 거의 전 도시가 괴멸됐고 도쿄 또한 심각한 피해를 당했으며 9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간토대지진 한 해 전인 1922년 일본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2%였던 데 비해 1923년에는 3.6%, 1924년에는 4.4%로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고 이후 1925년에는 이전 수준에 가까운 1.6%로 회복됐다. 좀 더 최근의 예로 간토대지진보다는 피해가 덜했던 1995년 고베대지진의 경우 한 해 전인 1994년 일본의 순수출은 GDP 대비 2.0% 흑자였는데 1995년 1.4%, 1996년 0.5%, 1997년 1.1%의 흑자를 기록하고 1998년에 1.8% 수준으로 회복됐다.

재해를 겪은 국가가 단기적으로 무역수지 혹은 경상수지가 급감하는 현상을 겪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마다 5000만 원을 벌어 5000만 원을 지출하던 직장인이 학업을 위해 1년 동안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2000만 원밖에 벌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1년 후에는 다시 풀타임으로 일하며 5000만 원을 벌 수 있다. 이런 경우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안 얼마를 지출해야 할 것인가? 올해 2000만 원을 지출하고 내년부터 5000만 원씩 지출할 것인가? 이 직장인이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올해 돈을 빌려 2000만 원 이상 지출하고 내년부터 돈을 갚는 방식으로 지출 수준을 어느 정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경제학에서 ‘소비 평활화(consumption smoothing)’라는 용어로 잘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큰 재해를 겪은 국가들은 생산 및 주거시설 파괴, 노동력 손실 등으로 단기적으로 생산과 소득이 급감하게 된다. 하지만 2, 3년 동안 재해 복구가 이뤄진 후에는 원래의 생산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일시적 생산, 소득의 감소가 있는 경우 그 국가의 합리적인 선택은 재해 시 지출을 급격하게 줄이는 것보다는 해외 차입을 통해 지출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재해 시 외국 재화를 더 많이 수입해서 즉 무역수지, 경상수지를 급감시켜 재화 사용 수준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시제간 접근방법(Intertemporal Approach)이라고 한다.

복구 끝나면 생산능력 회복될 것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엔고 현상과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도 일본 무역수지 감소 추세에 일조했을 것이다.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된다면 향후에도 일본의 무역수지 감소 추세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작년의 급격한 무역수지, 경상수지 감소의 대부분은 지진과 원전 사고하에서 일본이 지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순대외 차입 증가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복구 작업이 아직 진행되는 일본의 무역수지, 경상수지가 올해 당장 회복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향후 복구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는 이전 경험에서 볼 수 있듯 어느 정도 회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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