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동용]공천심사와 프로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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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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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이 스포츠가 아닌 첫 번째 이유는 심판의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반칙을 범하고 있는 선수에게 심판이 “하나, 둘, 셋” 하며 멈추라고 했을 때 넷, 다섯은 돼야 중지하는 건 프로레슬링에서 애교에 속한다. 심판이 주의를 주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는 일이 다반사고 심지어는 선수가 경기 중에 심판을 메다꽂기도 한다. 심판이 엉금엉금 기어 링 밖으로 도망가는 꼴불견 쇼가 벌어질 때도 있다.

▷미국에서 제일 큰 프로레슬링 단체인 WWE의 경기 중에는 유명 레슬러가 자기 맞수와 다른 선수가 벌이는 경기의 심판을 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하겠다며 경기용 짧은 팬츠 대신 검은색 세로줄무늬 심판복을 입고 링에 오르지만 행태는 가관이다. 맞수가 상대에게 결정적인 기술을 가하려 하면 잠시 경기를 중지시킨다. 점입가경은 갑자기 심판복을 벗어 던지고 상대 선수와 힘을 합쳐 맞수를 제압하는 것이다. 그러곤 시치미를 뚝 떼고 상대 선수의 손을 들어 올린다.

▷스포츠는 선수들이 따르기로 합의한 공정한 규칙을 전제로 한다. 그 규칙에 따라 경기를 순조롭게 이끌고 판가름하는 심판은 필수다. 심판이 오심(誤審)을 할 때도 있지만 “그것도 경기의 일부”라며 선수들은 승복한다. 정당의 공천심사는 그런 면에서 스포츠와 다를 바 없다. 합의된 기준에 따라 심판(공천심사위원)이 선수(후보등록자)들을 비교하고 승부(공천 여부)를 결정한다. 여야 모두 공천심사위원 선정을 두고 잡음이 적지 않다. 알고 보니 부적격 심판이 있었다. 자기 편 심판이 배제됐다고 볼멘소리도 터져 나온다.

▷정당의 공천심사를 프로레슬링에 비교하는 것은 결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프로레슬링은 고도로 훈련된 선수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하는 쇼다. 심판도 경기 규칙의 공정한 집행자라기보다는 흥행을 위한 배역에 불과하다. WWE에서 알파벳 E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연예)’의 머리글자인 이유다. 잘나가던 우리나라 프로레슬링은 1960년대 중반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한 유명 선수의 본의 아닌 고백 이후 쇠락해 갔다. 공정성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대가 다른 나라보다 더 큰지도 모르겠다. 심판의 권위는 공정성에서 나온다. 공천심사위원도 후보자라는 결과물을 내놓고 선거를 통해 평가받는다.

민동용 주말섹션O2팀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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