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김정은시대도 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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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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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북한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후계자론(論)이라는 것이 있다. 수령, 즉 김일성의 대를 잇는 문제를 체계화한 이론이다. 왕조시대 왕위 계승 규범과 같은 것이다. 후계 문제는 김일성이 1971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6차 대회 개막 연설에서 처음 공식 언급한 이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때 김일성은 “혁명의 과녁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세대는 바뀌어 광복 후 세대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등장하고 있으므로 이들에게 혁명의 대를 이어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북한은 체계화된 후계자론을 내놓았다.

후계자론은 혁명계승론, 혈통계승론, 세대교체론, 준비단계론, 김일성화신론으로 구성됐다.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혁명은 어렵고 복잡한 사업이기에 대를 이어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게 혁명계승론이다. 혈통계승론은 수령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혈통을 넘어 김일성식의 혁명적 재능까지 혈통의 의미에 포함된다고 하지만 권력 세습이란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세대교체론은 후계자가 수령의 다음 세대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고, 준비단계론은 수령이 살아있을 때 미리 후계자를 택해 후계 수업을 시켜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김일성화신론은 후계자가 모든 면에서 수령을 빼닮아야 하고 수령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은 김정일에게로의 권력 이양을 정당화, 합리화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김정일에서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에도 후계자론은 그대로 적용된다. 김정은은 후계자가 갖춰야 할 조건을 다 충족한다. 성형수술 얘기도 나오지만 아무튼 김일성의 외모까지 빼닮았다. 그에게 대장 칭호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함을 부여한 작년 9월의 당대표자회가 공식 후계자 책봉식이었지만 사실상 후계자로 정해진 2009년 1월부터 후계 수업도 받아왔다.

나이가 어리고 국정 경험이 일천함에도 김정은이 지금 신속하게 북한의 지도자로 인정받는 것은 혈통 계승자요, 공식 후계자라는 권위 덕택이다. 고모부 장성택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다고 해도 이런 권위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고모 김경희와 그 남편 장성택은 김정일과 같은 세대라 세대교체론에 걸린다. 김정은이 당과 군의 최고 권력인 총비서와 총사령관에 추대되고 1대 김일성, 2대 김정일에 맞먹는 극존칭의 우상화 대상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군부 쿠데타 등으로 반기를 들기 어렵다. 더구나 김정일은 김정은 시대에 대비해 미리 권력기관의 인물 교체와 제도 정비를 통해 반란이 어렵게 해놓았다. 가령 군은 총정치국과 총참모부가 동시에 이끌어야 작동이 가능하고 인사를 당에서 장악하고 있어 누구도 독자적으로 군내에 자기 세력을 구축하거나 부대를 움직이기가 어렵게 돼 있다. 한마디로 북한은 부자간에 세습하는 ‘김일성 왕조(王朝)’라는 사실에 답이 있다.

후계자론에 비춰 보면 김정은이 어떤 길을 걸을지도 추측할 수 있다. ‘혁명위업의 계승’은 후계자로서 거스를 수 없는 책무이니 선군(先軍)정치와 강성대국 건설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지금과 다른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거나 후계자론이 무시되는 급변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을 전면적으로 채택하거나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부가 섣부른 기대로 남북관계 재설정에 나서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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