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경석]언제까지 소방관의 희생만으로 불 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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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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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석 사회부 기자
강경석 사회부 기자
형제가 소방관의 길을 걸어온 이재만 소방위(39). 쌍둥이와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떠난 한상윤 소방장(31). 특전사 출신 김종현 소방교(29). 사랑하는 아내와 딸,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둘째를 뒤로한 채 유명을 달리한 이창호 소방장(30). 부모 곁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정도로 효자였던 이석훈 소방장(36). 열 살도 채 안 된 두 딸보다 먼저 세상을 등진 조승형 정비사(37).

이들은 올해 순직한 소방관이다. 3일 경기 평택시에서 발생한 화재 진화 현장에서 두 명이 순직해 올해만 벌써 여섯 명째다. 지난 5년 동안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소방관은 33명, 부상자는 1609명에 이른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인명을 구조해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평택에서처럼 구조할 사람도 없었는데 ‘만에 하나’를 염려해 제 몸을 아끼지 않다 변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불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이 받는 위험수당은 한 달 5만 원이다. 소방대원 1명이 담당하는 시민 수는 1400여 명으로 일본의 2배, 미국보다는 7배나 많다. 현재 소방관 3만7400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경찰처럼 3교대 체제라도 갖추려면 적어도 2만5000명은 더 있어야 한다. 이처럼 소방공무원의 처우는 열악하지만 매년 이들은 30만 건의 구조 활동을 위해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국가와 시민단체는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활발한 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소방관과 경찰관의 인권은 좀처럼 논의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2001년 3월 서울 홍제동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소방관 6명은 방화복도 없이 현장에 뛰어들었다. 21세기에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불 끄는 소방관에게 방화복도 주지 않던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 생명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의 인권은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일 아닌가.

비행기 안에서 위급 상황이 발생해 다른 이들을 구조하려면 먼저 본인이 산소마스크를 쓴 뒤에 구조 활동을 벌이는 게 상식이다. 한국 사회는 이 상식을 소방관에게도 적용하고 있는지 되짚어볼 때다. 사람이 있는지 혹은 이미 숨졌을지도 알 수 없지만 단 1%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 목숨을 던지는 이들이 한국의 소방관이다. 합리적인 구조 계획을 세워 무모한 희생이 나오지 않도록 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 이런 합리성과 충분한 보수, 인력 공급이라는 ‘마스크’를 이제는 소방관에게 씌워주어야 한다. 그동안 ‘마스크’도 없이 소방관을 불길로 내몬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표현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강경석 사회부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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