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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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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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전문기자
고미석 전문기자
미국의 현역 가수 토니 베넷은 1926년에 태어났다. 올해 85세 생일을 기념해 발매한 ‘듀엣 Ⅱ’ 앨범은 10월 8일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생애 최초로 이 차트의 정상에 오른 순간이자 빌보드 사상 최고령 1위라는, 깨지기 힘든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60세 나이차 딛고 듀엣곡 불러

이 앨범은 그 혼자 만든 게 아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보첼리, 미국의 머라이어 캐리, 7월에 요절한 영국의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 국경과 세대를 아우른 협업으로 완성한 음반이다. 그중에도 손녀뻘 레이디 가가와 부른 듀엣은 단연 화제다. 스물다섯 살 가가는 세계 최다인 1500만 명의 트위터 팔로어를 거느린 스타다. 파격, 엽기, 도발로 상징되는 옷과 퍼포먼스로 파문을 일으켜온 천방지축 가가와 노련한 전설적 가수. 둘이 빚은 화음엔 세대를 뛰어넘는 따스한 교감과 유쾌한 감동이 담겨 있었다.

이런 멋진 조합을 한국판으로 재현해보면 어떨까 엉뚱한 상상을 해보지만 베넷 또래 현역 가수를 떠올리기 힘들었다.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가 세대공존보다 세대교체에 더 익숙해진 탓일까.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 TV에서 세대를 넘나드는 소통이 보이는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베넷과 가가의 흥겨운 듀엣을 떠올린 것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최근 세대 간 대립문제가 사회의 화두로 부각했기 때문이다. 날마다 탐나는 ‘신상’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부모 세대보다 풍족한 삶을 살기 힘들어졌다는 2040세대의 불만, 유년 청년기에 시련을 겪지만 어느 정도는 성장의 혜택을 본 5060세대의 고집이 정면충돌한 오늘의 현실. 한국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성장과 복지의 갈등, 평등에 대한 요구와 기득권 고수 등 세대 간 대립의 원인과 대처방안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지만 문제를 푸는 실마리로 정서적 공감대를 찾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고와 행동방식이 아무리 달라 보여도 두 세대를 묶는 첫 단추는 상대를 먼저 헤아리는 마음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내 몫을 빼앗는 사람들이 아니라 풍요의 기초를 다진 세대, 뼈 빠지게 고생한 공을 모르쇠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고령화 사회를 지탱하는 주춧돌 같은 세대로 보는 관점에서 “우리가 남이가”란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전철을 공짜로 타는 것도 미안한데/피곤한 젊은이의 자리까지 빼앗아/미안하다/‘너도 늙어봐라’/이건 악담이다/아니다/나만 늙고 말 테니/너는 늙지 마라/늙으면 서러운 게/한두 가지 아니다/너는 늙지 마라’(이생진 ‘너는 늙지 마라’)

이런 마음이면 살아온 시간이 더 많은 세대, 살아갈 시간이 더 긴 세대의 공감도 어렵지 않을 듯싶다. 노년의 불안을 내가 겪지 않을 일이라 속단하고, 청년기의 좌절을 내가 건너오지 않은 일이라 깜박하는 순간 서로를 향한 매몰찬 공격과 삿대질은 피할 수 없다. 부모 자식세대가 각기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겸양의 낮은 자세를 가질 때 세대 간 연대, 세대 공감의 문이 조금씩 열리지 않을까.

세대의 벽 허물려면 상대 배려를

마음의 상처가 깊은 19세 청년과 영혼이 젊은 80세 할머니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어느 연극처럼 세대의 벽을 허물고 비빔밥처럼 어우러질 때 우리는 한층 성숙해진다. 그나저나 오늘의 점심 메뉴는 정해졌다!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 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물려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여 /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속 재료인 줄 안다 /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 그대도 내가 반가운가’(고운기 ‘비빔밥’)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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