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보편적이고 한국적인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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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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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부장
유윤종 문화부장
지난해 개봉한 영국 영화 ‘킹스 스피치’에는 말미에 영국 왕 조지 6세가 독일의 침략에 맞서 대국민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배경에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의 느린 악장이 깔린다. 연설이 끝난 뒤 자막이 오를 때 흐르는 음악도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의 느린 악장이다.

“영국 음악에도 어울릴 게 많은데….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나 본 윌리엄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어땠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제작진으로서는 더 귀에 편하게 와 닿고 설명하기도 쉬운 음악을 골랐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베토벤의 작품은 더 이상 ‘독일의 음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때 그것은 이미 인간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인류의 음악’이다. 이는 18, 19세기에 독일이 인류를 위해 성취한 값진 성과이기도 하다.

그 독일의 언론이 ‘보편적 음악’을 말했다. 이달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에 실린 ‘이것이 완벽한 물결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말에 부연하는 형식으로 기사는 한국의 한류가 ‘글로벌 한류’, 즉 보편적 음악으로 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기사를 읽고 1980년대 중반을 떠올렸다. 당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가 지배력을 갖던 때였다. ‘지금 이 땅’에 기반을 두지 않은 서구문화에의 애착은 조롱을 받기 일쑤였다. 선배들은 외국 문화를 추종하는 것은 결국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며 연암 박지원의 말을 인용했다. “중국의 수법을 본받고 한·당의 문체를 베낀다면 그 수법이 높을수록 의취(意趣)는 비루해지고 문체가 비슷할수록 언어는 더욱 거짓됨을 볼 뿐이다.”

연암의 문제제기가 당연하게 생각된 반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주장에는 저항감이 들었다. 변방인들이 세계인과 통하기 위해서는 결국 남의 눈에 독특해 보이는 걸 해야 한다는 것인가. “중심은 서구가 지배할 테니 너희는 변방에 머물러 있어라”라는 문화제국주의에 속은 결과는 아닌가…. 그 명제의 ‘출전’부터 찾고 싶었다. 인터넷의 검색 기능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그 ‘테제’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의 시대적 배경이 연암의 시대도, 1980년대도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문화의 흐름을 옆에 비켜서서 전달받던 변방의 한국은 이제 세계를 향해 문화를 발신하는 ‘센터’가 됐다. 보편적인 것을 잉태한 뒤 각국에 맞게 변용할 수 있다는 지금 한류 콘텐츠 생산자들의 전략은 맞다.

하지만 걱정도 든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가 인터뷰한 한류 관련 인사들은 “홍콩과 일본의 문화수출이 결국 시들어버린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만의 확고한 색깔이 없는 ‘문화산업’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따라잡힐 수 있는 ‘산업’일 뿐이다.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을 추구하면서도 고유한 색깔을 덧입혀 세계인의 문화적 입맛을 중독시키는 전략이 그래서 필요하다.

당장의 문화수출을 늘리는 것은 민간 기획자들의 일이다. 그들 역시 ‘민간에서 잘하도록 정부는 지켜봐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 문화 상품에 우리의 고유성을 착색시키는 전략은 정부가 긴 호흡을 갖고 추진해야 할 일이다. 당장에 성과를 보려 하지 말고 차분히 여유와 시간을 갖고 착수했으면 싶다.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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