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창원]일본인들, 신뢰는 흔들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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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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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원 도쿄 특파원
김창원 도쿄 특파원
지난해 1월부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가족은 물론이고 일본 친구들까지 나서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미어터지는 지하철보다 낫다는 생각에 계획을 끝내 강행했다. 하지만 고집을 부리는 기자의 속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도쿄 시내는 자전거용 전용도로가 거의 없는 데다 도로까지 좁아 집에서 회사까지 16km나 되는 길을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는 것이 솔직히 겁이 났다.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타다 보니 안장에서 내려오면 운동을 했다기보다 벌을 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자전거 출퇴근 2년여째 접어드는 요즘 출퇴근하는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자전거 타기가 습관처럼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처음의 불안은 한국에서 학습된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혹시 거칠게 차를 모는 운전자가 갑자기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을까, 교통신호를 무시한 자동차와 사고라도 나는 것은 아닐까….’ 가뜩이나 좁은 도로의 한 차로를 점령하고 달리는 자전거에 보낼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2년여 동안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자전거의 최대의 적인 총알택시도 도쿄에서는 본 적이 없다. 뒤에 있는 자동차들은 추월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길 때까지 자전거 뒤를 조용히 따라왔고, 신호등 앞 정지선을 정확히 지켰다. 한국에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 큰 차가 작은 차를 구석으로 몰거나 버스가 주행차로 한가운데 정차해 승객을 태우며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은 반칙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은 다른 곳이구나’라는 두터운 신뢰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에 살다 보면 상대방이 상식과 규칙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곳곳에서 발견한다. 일본에는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올 때 지역특산물을 사와 나눠 주는 오미야게(御土産) 풍습이 있는데 어딜 가도 1000엔(약 1만4000원) 안팎이면 손부끄럽지 않은 오미야게를 구할 수 있다. 한국 관광지에서는 으레 접하게 되는 바가지 상혼이 일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도쿄 주재 외국인 특파원 중에 서울에 취재를 자주 가는 동료기자가 있다. 그는 “일본에서는 낯선 곳에서 택시를 타도 돌아가거나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신뢰감이 드는데 서울에서는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한국에서는 긴장하고 상대방을 경계하느라 쉽게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때로는 일본 사회의 너무나 잘 갖춰진 신뢰 시스템이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해 일탈충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상식과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답답하리만치 더딘 단점도 있다. 또 비즈니스상의 신뢰가 내부인끼리 작동하다 보니 외부의 접근을 막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숙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도 이제는 상대를 믿지 못해 탐색하느라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소모해야 하는 비용을 고려해야 할 때가 됐다. 현대 사회학이나 경영학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부를 창출하는 요소로 토지, 자본, 노동 말고 사회적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주목하고 있다. 신뢰가 거래비용을 줄임으로써 효율성을 높여주는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에는 일본을 국운이 소진된 별 볼일 없는 나라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오랜 경기침체와 동일본 대지진, 원전사고 등 잇따른 악재에 일본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동안 지치게 달려온 일본 기업에서 피로감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본의 무형자산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신뢰사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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