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종석]한국여자골프 이젠 ‘승리 너머’를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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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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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스포츠레저부 기자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기자
최나연(24)은 1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한국(계) 선수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통산 100번째 우승을 장식한 뒤 한국 식당을 찾았다. 같은 테이블에는 말레이시아의 아마추어 유망주 골퍼 켈리 탄(17)이 앉았다. 탄은 이 대회에서 최나연보다 28타나 많은 13오버파를 치고도 말레이시아 선수 중 최고인 공동 65위에 오르며 베스트 아마추어상을 받았다. 최나연은 “대회를 통해 알게 된 켈리에게 불고기, 김치찌개 같은 한국 음식을 알려주고 싶어 자리를 같이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여자 프로 골퍼는 아직 낯설고 경기력도 한참 처진다. 시상식에 참석한 말레이시아의 나집 라작 총리는 켈리에게 “언젠가 말레이시아에 LPGA 타이틀을 안겨주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했다. 최나연은 미국에서 골프 유학을 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10대 소녀에게 어느새 우상이 돼 있었다. 그는 낯선 이국의 후배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도 한때 말레이시아보다 열악한 여자 골프의 변방이었다. 그런 한국이 100번째 LPGA 챔피언을 배출할 수 있었던 데는 골프 대디들의 지극한 부정(父情), 땀과 눈물로 상징되는 성실성과 함께 헝그리 정신이 한강의 기적처럼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맨주먹으로 해내던 시대는 필드에서도 유효기간이 지났다. 봉고차에서 라면을 끓여가며 운동을 했다는 얘기는 먼지 쌓인 스크랩북에나 담아둬야 할 때다. 한 해에 수십억 원을 벌면서도 사회봉사나 기부활동 등에 인색해 눈총을 받아서는 안 된다. 몇 해 전 LPGA투어에서 도입하려다 무산된 영어 전용 정책이 상금만 벌어가려는 듯한 일부 한국 선수를 견제할 의도였다는 해석도 있었다.

다행히 최근 국내외에서 자연재해 피해복구나 불우이웃 돕기 활동 등에 코리아 군단의 동참이 활발해지고 있다. 주니어 육성 기금으로 수만 달러를 전달하기도 하고 멕시코에 교실을 만드는 데 우승 상금의 절반을 내놓는 미담을 남긴 적도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 여자 골프는 LPGA투어 100승 달성을 주변을 보살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 정체 조짐 속에 대형 스타가 줄어드는 한국 여자 골프의 현실을 타개하는 데도 나눔의 정신은 동기 부여와 목표 설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입 맞춘 트로피가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면 금상첨화다. 한국 낭자가 쌓아 올린 금자탑은 새로운 지평을 향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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