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묵은 술과 옛 친구의 향기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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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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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최근 민간 경제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21일부터 24일까지 대만을 방문했다. 기대했던 마잉주(馬英九) 총통과의 회견은 이뤄지지 못했다. 내년 1월 14일의 총통 선거를 비롯한 바쁜 일정 때문이었다. 대신 마 총통의 오른팔 후웨이전(胡爲眞) 국가안전회의 비서장(총리급)을 23일 오후 타이베이 도심의 총통부 2층 접견실에서 만났다. 양안관계와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국가안전회의는 대만의 핵심 권력기관이다.

후 비서장은 수인사가 끝난 뒤 작고한 부친의 내력부터 얘기했다. “(선친이) 광복군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중국 군인들이 ‘광복군의 처우가 우리보다 2배나 좋다’고 부러워했답니다.” 장제스(蔣介石) 총통 휘하에서 4성 장군을 지낸 후쭝난(胡宗南)이 부친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광복군을 도왔던 공로로 1999년 8월 15일 그의 부친에게 훈장을 추서했다. 1992년 8월 24일 단교 이후 대만인에게 수여한 첫 훈장이다.

그는 훈장을 12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해왔다. 코팅한 서훈의 사본을 사절단장 백용기 서울·타이베이클럽 수석부회장에게 건넸다. 동행한 정태익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에겐 “이희호 여사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타이베이 사범대 총장을 지낸 그의 모친도 한국과 인연이 깊다. 재직 중 한국의 많은 대학과 자매결연했다. 그는 “한국과 대만은 경쟁관계이기보다 보완할 점이 더 많다”며 교류 확대를 주문했다.

그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일제강점기와 건국 이후 중화민국(대만)은 우리를 도운 일이 많다. 천안함 폭침 때도 외국 순방 중이던 마 총통은 긴급회의를 열어 성명을 내도록 했다. 19년 전 우리는 ‘새 친구(중국)’를 사귀기 위해 ‘옛 친구(대만)’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한중 수교 발표와 동시에 ‘72시간 내에 서울 명동 대사관 및 부산 영사관의 국기와 현판을 철거하라’고 매몰차게 통보했다. 대만인들은 분노와 비탄에 잠겼다.

그때 의리를 지킨 사람도 있었다. 백용기 단장은 무관으로 근무하던 대만 해군 대령과 친분이 깊었다. 그는 대만 대사관 철수 직전 수십 명의 관계자를 초청해 국악을 들려주며 새벽까지 통음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20년째 정부가 내팽개친 대만과의 우의를 다지고 있다. 서울·타이베이클럽의 창립에도 큰 역할을 했다. 중국문화대학은 21일 그에게 한국인으로선 10번째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하며 감사를 표했다.

최근 중국과 일본이 앞다퉈 대만과의 교류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은 22일 일본과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대만 언론은 양국이 중국 진출에 힘을 합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만은 일본 중소기업 전용공단도 조성하기로 했다. 마 총통 집권 후 양안관계도 눈에 띄게 발전했다. 정경 분리의 실용적 접근으로 양안 무역규모는 1500억 달러에 이른다. 최근 3년간 차관급 60여 회, 성장급 200여 회의 양안 교류가 이뤄졌다.

중국과 일본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 대만에서 만난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을 비롯한 정·관·재계의 고위 인사들은 한결같이 한국과의 교류 확대와 관계 개선을 희망했다. 최근 부임한 정상기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도 대만과의 관계 개선 의지가 강하다. 술은 묵은 술, 친구는 오랜 옛 친구의 향기가 짙다. 양국 관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신의 회복 차원만이 아니라 국익과 실리를 위해서도 그렇다. 내년 8월이면 단교 20년이 된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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