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철]고졸자를 위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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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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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한국은 학력 인플레 사회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고교생 열 명 중 여덟 명은 대학생이 된다. 4년제 대학 출신이 아니면 결혼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차이도 계속 벌어지는 추세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2010년 고교졸업자의 평균월급은 166만1000원. 4년제 대학 졸업자의 평균월급 258만9000원보다 92만8000원이 적었다.

고졸 취업난도 심하다. 정부가 공공기관 학력제한을 철폐한 이후 고졸 채용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 또 다른 국감자료에 따르면 122개 주요 공공기관 정규직의 고졸자 채용 비율은 2008년 6.3%, 2009년 4.4%, 2010년 3.0%다. 고졸 직원에게 적합한 직무에 대졸자가 몰린 것이 원인이다. 전형적인 정책 부작용이다.

국민의 교육수준이 높은 것이 나쁠 리는 없다. 다만 이로 인해 파생되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다.

실력도 의지도 부족한 학생들이 너도나도 4년제 대학에 가 부실 대학이 늘어난다. 등록금만 내면 입학이 가능하고 학위도 주는 ‘무늬만 대학’에 다니느라 부모 등골이 휜다. 4년 동안의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국가적, 사회적 낭비가 엄청나다.

최근 고졸 채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고졸 채용을 늘리니 대학에 진학하려는 특성화고 학생의 수가 줄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특성화고 교사들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우선 교사들은 정부 지원에 따라 대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고졸 채용을 확대하는 데 반색하고 있다. 그동안 진학 준비에 매달리던 상위권 학생들이 취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제시하는 채용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불만도 많다. 최근 특성화고에 학생 추천을 의뢰한 한 공기업은 자격기준으로 내신 4% 이내를 원했다. 어느 대기업은 입사 자격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를 요구하기도 했다.

서울 D특성화고 C 교감은 “괜찮은 대학에 진학할 능력을 가진 극소수 학생에게만 양질의 취업기회가 주어질 뿐 아직 일반 학생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너무 급하게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학교가 따라가기 벅차다는 의견도 있다. 부산 C특성화고 J 진로지도 교사는 “진로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며 “올해 목표 취업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교육청 사업신청 자격이 박탈되고 학교 지원금도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고졸 채용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이명박 대통령이 7월 한 은행을 찾아 고졸 행원들을 격려하면서 촉발됐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공기업도 고졸자 취업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독려했다.

뿌리 깊은 학력차별 문제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기업과 학교를 닦달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일시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몇 년 반짝했다가 시들면 특성화고 교육현장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정부는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성화고의 교육과정을 기업의 직무 수준에 맞게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임금 및 처우 격차를 줄이는 일이다. 고졸 성공신화가 대기업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고졸 채용 바람이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책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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