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설동훈]고졸이 정말 웃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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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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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10년 8월 ‘지구촌의 살기 좋은 나라 100개국’을 뽑았다. 한국은 국민 교육 수준과 학업성취도 평가 점수 등을 지표로 한 교육부문에서 핀란드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방한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을 소개하며 미국 학부모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고졸자 채용 기업에 인센티브 바람직

학계에서도 1950년대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이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동인의 하나로 교육을 통한 우수한 인적자본 축적을 꼽는다. 찢어지게 가난한 학부모도 자식은 최고의 교육을 받도록 허리띠를 졸라맸다. 세계 사회는 그것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 아무리 좋은 일도 그 정도가 지나치면 역효과가 생긴다. 한국인들은 선진사회에 진입한 이후에도 자신과 가족의 삶의 질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녀 교육에 몰입하고 있다. 자녀의 대학 입시에 유리한 환경을 좇아 학부모들은 주거지를 선택했고, 그 결과 ‘교육특구’로 알려진 지역의 집값이 폭등했다. 가족 이산의 불편함과 괴로움을 감수하는 기러기가족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고등학교만 나와서는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힘들고, 대학도 서울에 있는 명문대나 외국 명문대를 졸업해야만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사회제도가 짜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15∼24세 학생이 하루 학습하는 시간은 평균 7시간 50분으로 평균 5시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길다. 한국 학생의 공부 시간은 보충수업이나 사교육 시간의 비율이 높고 자기주도학습 시간 비율은 매우 낮다. 그러다 보니 한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대학 입학 이후 급격히 추락하고 만다.

정부는 2일 공정사회추진회의에서 고졸자의 채용과 임금, 근로조건, 승진에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정책을 발표하였다. 공공기관 채용 시 입사지원서에 학력란을 없애고, ‘병역필 또는 면제자’로 제한하는 규정도 삭제하며, 공공기관 경력 4년차 직원의 처우를 대졸 초임자와 비슷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 고졸자 채용에 앞장선 민간 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학력 및 학벌 차별을 철폐해 공정사회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그동안 단편적으로 나왔던 고졸자 취업을 위한 방안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려는 시도로 본다. 실력보다 간판을 우선시하는 사회풍조를 바로잡아 학력지상주의 폐해를 시정하려는 대책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다 보니 대졸자들이 고졸자의 일자리를 잠식해 왔는데 그것을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고졸자들의 취업 기회를 확충하여 노동시장에서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고졸자 적합 직종에 대졸자가 하향 취업할 경우 업무 성과가 오히려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과 공공기관의 생산성 증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한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말아야

그렇지만 고졸자 채용 확대를 단기 목표로 세워 대졸자, 특히 전문대 졸업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방식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학력 및 학벌 차별 시정은 여성, 장애인, 소수민족 등 본인의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속성에 기인한 ‘차별 해소를 위한 적극적 우대 조처’와는 다른 방식을 취해야 한다. 고졸자 적합 직종 등 일자리 성격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고, 또 직원에게 직업능력 향상 기회를 제공하면서 근로 생산성과 승진 등 인적자원 평가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차별’ 시비에 휘말려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른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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