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윤]업계와 협의도 없이 토종OS 만들겠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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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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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윤 산업부
정재윤 산업부
“처음 들어본 얘기다.” “황당하다.”

정부가 국내 전자업계와 손잡고 독자적인 개방형 운영체제(OS)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에게 23일 이 같은 반응을 전하자 “업계와는 이제부터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관련 기업, 연구소, 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기획위원회를 만들어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OS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업계와 사전 협의도 안 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구글이 모토로라 휴대전화 부문을 인수하는 등 최근 글로벌 IT 산업은 급격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한국 IT가 위기라는 우려도 많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글이 모토로라에 한 단계 높은 OS를 먼저 적용하기라도 하면 경쟁력을 잃고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독자 OS 개발을 해결책으로 본 듯하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못 짚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위기에 빠진 노키아도 ‘심비안’이라는 OS가 있고 한동안 인기였던 블랙베리 역시 자체 OS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미 2006년 초부터 OS를 개발해 2009년 말 ‘바다’를 시장에 내놓았다.

OS가 하드웨어에서 다른 소프트웨어가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프트웨어라는 점은 맞다. 하지만 OS의 진짜 힘은 어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담기느냐에 달려 있다. 애플의 iOS나 구글 안드로이드가 성공한 것은 OS 자체가 뛰어났다기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이익을 나눠주며 생태계를 풍부히 가꾸는 모델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나서서 OS 개발을 독려해서 이들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지경부 측은 또 “정부는 ‘판’만 만들어주는 것이지 ‘정부 주도’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협의도 안 한 채 발표부터 해놓고 업계는 따라오라는 것이 ‘정부 주도’가 아니면 무엇일까. 최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정보통신부가 현 정부 들어 해체되면서 한국의 IT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지경부에서 이견이 나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진정 한국 IT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부터라도 국민과 기업의 이야기를 겸허히 듣고 ‘스마트’한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정재윤 산업부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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