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완석]9년만의 북-러 정상회담,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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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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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러시아연구소장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러시아연구소장
20일 시작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러시아 방문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의 방러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이렇다. 6자회담의 재개가 시계 제로인 상황에서, 더욱이 최근 1년 사이 이례적으로 중국을 3차례나 다녀온 상황에서 곧바로 러시아 방문을 결행했고, 북-러 정상회담이 2002년 이래 9년 만에 개최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를 포함해 관련국들의 관심은 김정일의 방러 목적과 북-러 정상회담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미칠 영향에 모아진다. 김정일의 방러 배경은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 환경과 북-러 간 여러 현안 분석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방러의 주요 목적으로 김정은 후계체제 안착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교착국면의 6자회담을 평양에 유리한 조건과 형식으로 재개하기 위한 환경 조성, 에너지 및 경제난 극복을 위한 지원 호소, 중국과 러시아 균형외교 복원을 통한 국익 극대화, 러시아제 첨단무기 요청, 약 38억 루블 규모의 채무 탕감 등을 제시한다.

이 가운데 김정일의 방러를 견인한 핵심 동인으로 다음 세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김정은 후계 세습체제에 대한 크렘린의 암묵적 동의를 얻고, 경제적으로는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식량과 에너지 지원이 차단된 상태에서 러시아로부터 대규모 물적 지원을 확보하며, 외교적으로는 대러 유대 강화를 통해 중국에 치우친 대외관계의 균형을 잡는 가운데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남한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러시아도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의 국익 증대를 위해 대북 협력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 해소에 일종의 출구를 제공함으로써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안정적 개발과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에 유익한 환경을 형성할 수 있다. 또 대북관계 공고화는 평양에 대한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 견제효과와 더불어 6자회담을 포함해 한반도 정세 운용 과정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전략적 레버리지 확대 기회도 부여한다.

현 시점에서 북한과의 관계 강화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지정학적 이익이다. 남-북-러 3각 경협을 활성화함으로써 러시아 정부가 국가적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시베리아 극동지역 개발에 탄력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렘린이 과거부터 남북한을 대상으로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3대 숙원사업, 즉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사업, 러-북-남 전력망 연계사업과 가스관 부설사업 등은 북한과의 협상 여하에 따라 조속히 실현될 수 있다.

북-러 정상이 모두 다중적 포석을 깔고 회담에 임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중국 견제라는 외교적 공통분모 위에 북한은 정치(김정은 후계 구축), 러시아는 경제(남-북-러 삼각 경협)에 주안점을 두고 회담에 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9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과거 북의 후원자로서 러시아의 역할을 연상하면서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다. 하지만 북-러 간 동맹관계가 해체된 지 이미 오래고, 러시아가 북한보다도 한국과 훨씬 더 중요하고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안보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또 그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나름대로 기여해왔다는 점을 두고 볼 때 북-러 정상 간 회동이 한반도 정세와 한국의 국익에 오히려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필자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번 회담이 북한의 개혁과 개방, 비핵화를 촉진하고 북을 관통하는 철도와 가스관 연결을 앞당겨 한반도 평화구도 정착과 동북아의 공동번영에 기여하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러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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