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상만]서비스 산업적 사고로 관광산업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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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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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만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회장

남상만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회장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에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있다. 3수 끝에 따낸 것이어서 그 가치는 더욱 값지다. 관광인의 한 사람으로서 평창 올림픽이 가져다줄 관광효과에 특히 기대가 크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유치한 초대형 국제행사가 기대만큼 관광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반성 때문이다. 기대는 컸지만 실적은 언제나 그 기대를 밑돎으로써 또 다른 반성의 재료로만 남아왔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조업적 사고로 서비스업에 접근해 왔던 잘못 때문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제조업의 성취는 불행하게도 서비스산업에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사람이 드물다.

관광을 포함한 서비스산업은 서비스적인 사고로 접근해야만 발전의 길을 찾을 수 있음에도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제조업적 생각으로 접근하다 보니 서비스산업의 발전과는 계속 멀어져만 왔다. 그 증거는 이런 것들이다.

해마다 9월이면 ‘세계 관광의 날’을 맞게 된다. 이날을 기념해 우리 정부도 관광산업에서 공을 세운 분들을 찾아 훈장과 포장을 수여한다. 그러나 훈장과 포장 수여 대상자 중에는 우리 국민에게 해외여행을 알선하는 여행업체인 이른바 ‘아웃바운드’ 분야는 아예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한 푼의 달러라도 벌어들여야만 우리가 사는데 아웃바운드는 오히려 달러를 쓰는 분야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우리가 외국관광객을 불러오려면 우리도 나가주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하고 우리 이익만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수출과 수입만을 따지는 제조업적 생각이다. 더구나 물건이 아닌 사람의 이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부가가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외국에 나갈 때 돈을 쓰지만 거기서 새로운 것을 얻어온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단순 숫자를 넘어서는 이익을 얻는 것이다. 이런 제조업적 시각은 서비스산업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 관련 정부 예산이 전체의 2%도 넘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도록 만들고 있기도 하다.

15세기 유럽의 르네상스도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정신적 혼란을 겪었다. 봉건시대를 지나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지만 여전히 1000년을 지배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해 엉거주춤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객관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다가 피렌체의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플라톤적 사고를 도입했고, 이는 이후 르네상스를 지탱하는 새로운 정신이 되면서 문예부흥시대를 활발하게 이끌어 나가게 된다. 플라톤주의는 세상이 계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성, 정신의 역할을 중시했다.

서비스산업의 발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비스산업은 서비스가 지닌 원래의 정신을 존중하고 그 자체를 인정하는 새로운 자세의 바탕 아래서만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상만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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