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북한은 대답 없는데 수해물자 먼저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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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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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정치부
이정은 정치부
북한은 7일까지도 대한적십자사(한적)가 제안한 50억 원 상당의 수해 지원을 수용할지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3일 한적의 제의를 받고 다음 날 “식량과 시멘트로 통 크게 지원해 달라”며 지원 품목과 규모에 내심 불만을 내비친 이후 북한은 매체들을 통해 농경지 침수와 가옥 파괴, 이재민 발생을 잇달아 보도하면서도 남측 제의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대북 수해 지원 계획을 짰던 정부로서는 머쓱해진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당초 계획대로 수해 지원 물자를 준비해 북한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자금집행 의결, 조달청 입찰공고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 준비가 끝나는 대로 경의선과 동해선 육로를 통해 9월쯤 첫 지원 물자를 전달할 방침이다. 북한이 요구한 식량과 시멘트, 장비는 지원하지 않고 당초 제의했던 대로 지원 품목을 생필품과 의약품으로 한정할 계획이다.

통일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지원 물품을 안 받아들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설마 주겠다는데 안 받겠느냐”고 말했다. “북한이 우리의 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과도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북한의 수용 의사와 상관없이 수해지원 물자를 북측에 갖다 놓고 오겠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렇게 올려 보낸 물품을 북한이 남쪽으로 다시 돌려보내지는 않더라도 고마워하면서 받을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갖고 왔으니 놓고 가라”는 식이 될 수도 있다. 받는 쪽이나 주는 쪽이나 썩 내키지 않는 ‘생색내기 지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남측의 선의에 되레 ‘통 큰 지원’을 요구하는 북한의 오만한 태도에 1차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나 북한의 답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지원 물품을 북측에 떠안기겠다는 것은 성급해 보인다. 정부 내에서 충분한 조율도 거치지 않은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해서 지원해야 하느냐. 북한과 더 의견을 교환하면서 의사를 확인한 뒤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의한 지원 품목과 규모가 적정했는지도 다시 돌아볼 문제다. 한 북한 전문가는 “피해가 올해보다 크지 않았던 지난해에도 정부가 쌀 시멘트를 포함해 100억 원 상당의 지원을 제의했다”며 “남북이 모두 쪼잔하게 굴다가 한마디로 웃기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가 대북 지원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도 나름대로 최소한의 노력은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이정은 정치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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