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철희]가까운 南北통일, 먼 南南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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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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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정치부 차장
이철희 정치부 차장
정부가 8·15광복절을 앞두고 통일비용 추계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연구결과를 공개한다고 한다. 앞으로 통일이 10년, 또는 20∼30년 안에 이뤄진다는 가정 아래 단기, 중장기로 나눠 액션플랜을 만들고 비용은 얼마가 들지, 어떻게 조달할지도 제시한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통일세 논의’를 제안한 이후 그 답을 내놓는 셈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주어진 분단 상황의 관리를 넘어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무슨 통일이냐’ ‘국면전환용 카드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꽉 막힌 남북관계 속에서 국내의 통일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정부도 다양한 논의의 장을 마련했고 상당한 예산도 썼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통일이라는 메시지는 이중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통일을 민족적 과제이자 당위라고 여기면서도 통일에 따른 혼란과 경제적 부담을 우려한다. 더욱이 통일세 신설, 통일채권 발행 등 각론으로 들어가면 심리적 거부감은 더 커진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공론화 과정에서 통일이 가져다줄 이익, 즉 통일 편익도 적지 않음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1년의 논의 속에 계속 따라다니는 의문이 있다. 무엇보다 통일을 대비하자는데, 대체 어떤 통일을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통일 논의를 두고 많은 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의 급변사태는 고려하지 않는다. 점진적 평화통일을 준비하자는 것이다”고 강조한다. 한편 이 대통령은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고도 말한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듯 통일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원론적 발언으로만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마치 ‘임박한 산사태’처럼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통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는 이유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많은 이가 ‘머지않은 북한의 내폭(內爆)’을 점쳤다. 심지어 북한은 1주일, 열흘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던 학자들도 있었다. 그런 관측이 무색하게 북한은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운 상황을 17년이나 버티고 있다.

근래 김정일의 건강 이상과 후계체제의 불안정성은 다시 붕괴론에 힘을 실어줬다. 1인 독재체제에서 수령의 부재는 곧 체제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붕괴는 우리에게 재앙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런 급변사태의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 전체의 공론을 모으는 통일론으로 이어지기에는 불충분하다.

보수진영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평화와 화해협력만 얘기했을 뿐 통일정책은 없었다고 비판한다. 이 대통령이 ‘분단 상황의 관리를 넘어’ 통일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이제 생각을 바꿔 과거 10년간 화해협력을 강조한 것은 이전 노태우 김영삼 정부의 통일방안(화해협력→남북연합→1국가)에 맞춘 노력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통일 논의에 빈자리는 없어야 한다.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어떤 통일이 좋은지 국민적 공론을 이뤄가야 한다. 그 첫걸음은 남남통합 노력에 있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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