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영률]기적의 금빛 관악앙상블을 꿈꾸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영률 서울대 음대 교수
김영률 서울대 음대 교수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꾼 베네수엘라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관악 주자들에게는 세계적 축제나 다름없는 제15회 세계관악협회(WASBE·The World Association for Symphonic Bands and Ensembles) 콘퍼런스가 7월 초 대만 자이에서 열렸다. 또 하나의 엘 시스테마 꿈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콘퍼런스는 연일 계속되는 연주와 관악인들의 진지한 고민으로 채워진, 더없이 값진 시간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악앙상블 13개팀이 매일 오후 연주했고, 오전에는 그들이 새로 찾거나 위촉한 곡들을 소개하는 레퍼토리 세션이 열렸다. 또 관악 독주자들의 마스터클래스와 유명 지휘자들의 지휘법 강좌, 아시아에서의 밴드 운동 및 절판된 곡들의 재출간에 관한 패널 토론 등 관악에 관한 모든 성과를 한자리에 모아 그야말로 세계 관악 음악인이 서로의 음악 활동을 격려하고 교류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300년 이상 되지만 목관 금관 타악기로 편성된 관악앙상블의 역사는 100년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 음악인은 1981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관악 발전을 위해 관악밴드 운동을 후원하는 협회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2년 후인 1983년 노르웨이 시엔에서 세계 34개국 관악 음악인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WASBE 콘퍼런스가 개최됐다. 이 행사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오가며 2년마다 열리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1995년 일본 하마마쓰, 2005년 싱가포르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밴드’ 사라져

WASBE 축제를 보며 놀란 것은 관악앙상블의 훌륭한 연주만은 아니었다. 대만에 1500개, 일본에 1만5000개, 미국에 3만 개의 밴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스페인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는 동네마다 아마추어 밴드가 있어 누구든지 악기 연주를 배우고 자신의 실력에 맞게 합주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음악을 통해 건강한 여가생활을 즐기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경험하는 이런 산교육 속에서 훌륭한 연주자가 다수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좀 다르다. 관악앙상블 단체는 ‘각종 악기로 음악을 합주하는 단체, 주로 경음악을 연주한다’는 사전적 의미의 밴드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껄끄러워한다. 아마 경음악을 주로 연주한다는 편견이 싫어서인 듯하다. 하지만 1960∼80년대 교련이 필수과목이던 당시 중고교에 많은 밴드가 있었고, 관악앙상블의 음악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1990년대 입시 중심 교육으로 거의 모든 학교의 밴드가 사라진 이후 음악은 소수에게 대학에 진학하는 수단으로 변했다. 비전공자에게 관악앙상블은 꿈도 꾸기 어려운 먼 나라의 이야기가 돼버린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관악 연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1995년 제주 국제관악합주 축제가 만들어져 관악 주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또 2000년부터 모든 금관악기 종목을 위한 콩쿠르가 격년으로 열리고 있다. 2009년 국제음악콩쿠르협회(WFIMC)는 이를 국제콩쿠르로 인정해 세계 관악 연주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대한민국 국제관악제도 비상을 꿈꾸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동네 앞 산책로에서 색소폰 소리가 들리고, 아마추어 7080 색소폰앙상블 단체가 활동하는 등 음악 애호가들이 관악 연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다른 악기에 비해 비교적 배우기 쉽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들은 어쩌면 음악을 하는 기쁨에 더없이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럿이 모여 앙상블을 하는 묘미, 그 어떤 경험과도 맞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관악기 연주는 우리가 말을 하거나 노래할 때 느끼는 것과 흡사하다. 숨을 들이마신 다음 내쉴 때 개개인 고유 음성의 말과 노래가 나오듯 관악기에서도 개인의 고유한 음성이 악기를 통해 나오게 된다. 그 소리는 숙련을 통해 더 아름다운 소리로 표현되고, 이러한 아름다운 소리가 모여 앙상블이 되며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만들어져 청중이 연주자와 함께 호흡하게 된다. 음악이 주는 이런 기쁨과 행복을 어떤 교육이 대신할 수 있을까.

관악기 연주하며 삶의 여유를

이처럼 아름다운 교육을 전국 초등학교에서 누구나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또 동네마다 아마추어 합주단이 있어 연습실에 모여 합주를 즐기는 여유로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꿈나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인성교육이, 음악 애호가들에겐 행복한 삶이 될 이런 참교육은 또한 지금보다 더 많은 관악인들이 훌륭하게 성장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외국 언론이 ‘한국에 관악밴드가 3만 개나 있고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한 기사를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 더 관심을 갖는다면 이루어질 수 있는, 즐거운 꿈을 꿔본다.

김영률 서울대 음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