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용희]대학생들의 여름방학 생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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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평론가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평론가
여름방학이 돌아왔다. ‘알바’의 계절이다. 알바 새내기는 처음 편의점에 몸을 담근다. 이후 식당 서빙, 타이핑, 길거리 설문조사, 물건 배달, 백화점 이벤트 코너 판촉원, 시식코너 판촉원, 영화촬영 도우미. 대한민국은 알바천국이다. 최저 시급 4320원. 두 달을 견디면 100원을 더 올려주겠다고 주인은 은근히 말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주는 알바를 찾기 위해 청소년, 대학생들은 인터넷서핑을 한다. 눈에 불을 켠다.

알바-취업 위해 치열한 경쟁

대학생인 딸애도 벌게진 눈으로 아침식탁에 나타났다. 밤새 알바 사이트를 드나든 모양이다. 며칠이 지나자 딸애는 아주 괜찮은 알바 자리를 찾았다고 좋아했다. 회계사무실에서 업무를 돕는 알바였다. 이력서를 만들고 사진을 찍는다. 시급 6000원,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공부나 할 것이지 알바는 무슨 알바야?” 다이어트 지옥을 헤매던 지난 방학 때보다는 좋아보였다. “엄마는, 돈에서 권력이 나오고 밥값에서 자주성이 나온다는 말도 몰라?” 딸애는 뾰로통해진 목소리로 입을 비죽인다. 하긴 금융위기 세대이자 88만 원 세대가 아닌가. 그러나 딸애의 다음 말 “내가 시급 6000원짜리 한다니까 다른 애들이 알려달라고 난리야. 하지만 난 절대로 안 알려주∼지. 내 알바 자리 뺏기니까. 얌!” 이 얼마나 쿨하고 진지한 이야기인가. 나는 너무 놀라 염통이 터지는 줄 알았다. 딸애는 고교 시절 반애들이 수행평가 1점 때문에 얼마나 예민해하는가를, 친구들끼리 노트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도 철저하게 비밀이라고, 말하며 어이없어했다. “흥, 병자들이야.” 딸애는 흥분해 울컥울컥 화를 쏟아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두려워졌다. 생존의 방식,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경쟁 이데올로기는 우리를 어떻게 먹어치웠나. 나는 딸애의 얼굴을 두려운 듯이 쳐다봤다.

경쟁과 생존의 법칙은 학교에서부터 철저하게 학습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너 죽고 나 살자”의 방식. 등급제를 만들고 석차를 낸다. 줄 세우기를 시키고 계급의 의미를 각인시킨다. 아니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경쟁이란 삶의 원리가 돼버렸다. 어릴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철저하게.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고 누구는 역설한다. 경쟁력을 키운다는 말은 자신의 능력을 키운다는 말과 동의어가 돼버렸다. 누군가를 이기지 않고는, 누군가를 쓰러뜨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일까.

경쟁 내몰리다 잃어버리는 것들

누군가와 대결하고 세상과 불화하면서 성장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인간은 경쟁의 논리 속에서 대결의 법칙으로 진화해왔다. 세상과 맞부딪치지 않으면 성장할 수도 없다. 한국 사회는 특히 격동의 역사를 살아왔다. 식민 체험과 광복, 이데올로기 전쟁과 오랜 군부독재. 언제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치욕을 견디면서 모욕에 밥 말아 먹으면서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 불굴의 민족이다. 하지만 이 치열한 생존의 논리가 성과주의적 삶과 강박적인 경쟁의식을 낳았다. 속도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고속도로에 납작하게 깔려 죽은 야생동물 신세가 되고 만다. 속도의 희생자 말이다.

이제 스스로를 경쟁기계로 만드는 것도 부족해 경쟁을 즐기게까지 됐다. TV의 서바이벌 게임 ‘나는 가수다’ ‘신입사원’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기적의 오디션’. 매번 탈락자와 승자가 있는 게임. 의자 뺏기 놀이처럼 누군가 하나씩 제거돼야만 하는 게임. 달리기를 하면서 팔꿈치로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이길 수 있는 잔인한 게임의 현장에 초대되었다. 세상은 이미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글래디에이터가 되었다.

생존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물가가 오르고 알바생 시급은 열악하다. 취업은 힘들고 정규직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경쟁은 인간사회의 발전의 논리라기보다 인간을 스스로 소외시키는 논리가 되었다. 권력자와 지배자는 측근들끼리 경쟁하도록 은근히 부추긴다. 부모는 남의 아이와 비교해 내 아이가 ‘영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고교는 입시 경쟁을 부추긴다. 입시 경쟁은 취업 경쟁이 되었다. 취업 경쟁은 승진 경쟁이 되었다. 승진 다음엔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 기다리고 있다.

여름방학이다. 자격증시험학원, 운전면허학원, 토익토플학원, 취업학원, 편의점과 식당 서빙. 대학생들이 버글거린다. 취업 경쟁, 알바 자리 경쟁이 뜨겁다. 어디서 ‘연대의식’의 아름다움을 배울 것인가. 어디서 자신의 참된 내면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영혼’이니 ‘내면’이니 하는 말은 ‘인건비’도 안 나오는 사치인가. 우리는 ‘합리적으로’ 분열돼가고 있다. 나는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말이 두렵다. 경쟁이 내면화되는 것이 두렵다. 경쟁시키는 자본의 논리가 무섭다. 경쟁시키고 즐기고 있는 무대 밖의 우리 자신이 두렵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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