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대 ‘학문 간 벽 허물기’에 기대 거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8일 03시 00분


지식의 융합과 복합은 세계의 메가트렌드다. 20세기까지가 지식의 깊이를 다지는 전문화(專門化)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기존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와 영역을 만들어내는 융합과 복합의 시대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4일 대한민국 과학기술연차대회 특별강연에서 “지구상에 새로운 물질은 없고 새로운 융합만 존재한다”고 단언했다. 휴대전화에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인터넷 통신과 정보검색을 가능하게 한 스마트폰은 지식 융·복합 시대의 상징적 산물이다.

서울대 학장급 교수들은 오늘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추진해야 할 55개의 미래 어젠다를 제시한다. ‘학문 간 벽 허물기’라는 목표 아래 공대 자연대 의대 약대는 물론 인문대와 미대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연구진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제시한 어젠다 가운데 의료·바이오와 기계 제조가 융합하면 대체 장기(臟器)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에너지와 자원이 섞이면 휴대용 태양전지가 탄생할 수 있다. 바이오와 나노기술을 결합하면 극소형 로봇이 인체의 혈관을 돌아다니며 고난도 수술을 해내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한국의 대표 대학으로서 존재감과 국립대의 사명감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행보다.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치고 중국과의 산업기술 격차도 바짝 좁혀지고 있다. 한국인 특유의 속도와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으로 발전을 이룩한 우리 경제는 곳곳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 갇혀 있는 이 시기에 우리는 학문과 산업의 융·복합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내야 한다.

서울대는 학문 융·복합에 상당한 의지와 추진력을 보이고 있다. 2009년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을 설립해 나노융합, 지능형융합시스템, 디지털정보융합 분야에 석·박사 과정을 개설했다. KAIST에 있던 안철수 교수가 올해 2학기부터 이 대학원 대학원장으로 부임한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안철수백신연구소를 설립한 ‘벤처 1세대’인 안 원장은 지식 융·복합의 모범 사례로 부족함이 없다.

융·복합 연구는 선진국에서도 대학들이 선도한다. 교수에게 다른 전공 분야의 논문 제출을 의무화하는 대학도 있다. 서울대의 발 빠른 대처와는 달리 KAIST가 신규 교수 임용 때 융합연구기관인 KAIST연구소 연구원을 겸직하도록 한 규정을 지난달 폐지한 것은 시대 변화를 못 읽은 개혁의 후퇴로 보인다. 다른 대학들도 지식 융·복합 시대에 대비하는 노력을 서두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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