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일준]정책 어젠다 세팅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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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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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준 인컴브로더 대표
박일준 인컴브로더 대표
정책의 성패 여부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 이슈는 어젠다 세팅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좋은 사례다. 반값 등록금이란 갈수록 치솟는 대학 등록금이 학생과 부모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 것으로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여 가계 부담을 덜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게 당초의 취지였다. 하지만 근본 취지와 무관하게 ‘반값’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표현에 이끌려 반값 등록금 제안 발표 이후 온 국민의 관심과 초점은 온통 등록금 인하 여부에 쏠리게 되었다. 잘못된 어젠다 세팅으로 국내 교육환경 개선에 필요한 다양한 의제가 반값이라는 덫에 갇히게 된 셈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자는 제안이 잘못일 리 없다. 하지만 과연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면 대학 교육을 둘러싼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세계 100위권 순위 안에 진입한 대학이 극소수인 우리나라 교육의 질적 수준, 졸업을 해도 취업을 못하는 청년실업 문제, 이른바 일류대를 나와도 유학을 가야 인정을 받는 현실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등록금 문제 자체도 해결될지 의심스럽다. 정말 반값 등록금을 실현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줄인다고 해도 그 부담은 해소되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될 것이 뻔하다. 교육재정 지원과 관련해 정부 예산 규모의 확대 얘기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결국 대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국민의 세금으로 분담하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애초에 교육 선진화 방안이나 국내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 같은 더욱 근본적인 문제에서 어젠다를 끌어냈다면 등록금 문제를 포함한 한층 다양한 논의와 접근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전의 ‘반값 아파트’ 역시 어젠다 세팅이 잘못되어 문제가 된 정부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치솟는 주택 가격을 진정시키기 위해 제시됐던 이 정책은 결국 과도한 시세차익을 유발하는가 하면, 집값이 반값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대기 수요자들로 인해 거래 부진과 전세난만 가중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교육비 부담 경감과 공교육 내실화를 위해 제시됐던 ‘학원 심야교습 금지’ 제도는 불법 과외 성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가진 정책이라도 초기의 어젠다 세팅이 잘못되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시작 단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자극적인 어젠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좋다. 하지만 이는 맛은 달콤하지만 무거운 책임이 뒤따르는 ‘금단의 열매’와도 같다. 정책을 입안할 때는 어젠다 세팅 단계에서부터 전략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진정으로 대학과 교육 관련 이슈들을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어젠다 세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박일준 인컴브로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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