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北-中관계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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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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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요즘 중국은 나라 전체가 온통 붉은색으로 물결친다. 다음 달 1일 중국 공산당(중공) 90주년 창당 기념일을 앞두고 경축활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 때 중공 군대의 활동을 그린 영화 ‘상감령’의 주제곡 ‘나의 조국’ 같은 홍가(紅歌·붉은 가요란 뜻으로 혁명가요)가 도처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현재 중공과 가장 가까운 정당은 북한 노동당일 것이다. 양당의 인연은 길고도 깊다. 김일성 주석은 1931년 중공에 입당해 산하 유격대에서 활동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8월, 올해 5월 방중길에 아버지의 혁명유적지를 방문한 이유도 이런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북한과 중국은 국가 대 국가보다 당과 당의 관계가 우선한다. 5월 김 위원장의 제7차 방중도 중공의 초청으로 방문한 비공식 방문이었다. 양국 정상 공동성명에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공 총서기, 국가주석 초청에 따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방문했다’고 나온다. 올해 1월 후 주석의 미국 방문, 2009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서는 후 주석 타이틀로 중공 총서기란 것을 붙이지 않았다. 중-미 정상의 만남은 국가 대 국가의 만남인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의 3남이자 후계자 김정은의 방중은 이미 형식적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됐다. 실권이 있느냐를 떠나 김 부위원장의 중국 측 카운터파트는 시진핑(習近平)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다. 시 국가부주석은 중국 인민해방군 최고 지휘기구인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되면서 사실상 후 주석을 이을 차기 중국 최고지도자 자리를 확보했다. 김정은은 후계자라는 특수한 위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신분으로 중공의 현재 및 미래 최고 지도자를 만날 수 있다.

노동당과 중공 사이에는 많은 인연이 얽히고설켜 있다. 중국인은 6·25전쟁 때 중공군의 참전을 떠올리지만 북한 측 관점은 다르다. 북한의 여러 자료에는 1940년대 후반 국공내전 때 코너에 몰렸던 중공에 노동당이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설명한다. 패전한 일본군에게서 노획한 장비를 건네줘 중공이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을 자주 접촉하는 한 조선족 인사는 최근 이런 말을 전했다. 창당 90주년을 앞두고 중국에서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다(沒有共産黨沒有新中國)”라고 강조하지만 북한인들은 이를 “노동당이 없었다면 중국 공산당은 없었다”라고 패러디한다고. 어찌됐건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노동당과 중공의 관계를 중국 관영 언론은 ‘선혈로 엉킨’이라고 표현했다.

중공은 90년 동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을 통해 수천만 명이 굶어죽거나 숙청되는 엄청난 재앙도 저질렀다. 또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라는 정치적 급변도 겪었다. 하지만 잠자던 용을 깨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비상하게 만들었다. 부패 비리 빈부격차 등등 숱한 문제가 상존해 있지만 중공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공산주의 퇴조에도 중공이 이처럼 온존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혁개방’을 해 인민 생활을 윤택하게 했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야 친구가 생기고,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알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최근 북-중 경제합작의 움직임이 전례 없이 활발하다. 조직부장 등 중공의 핵심인사들이 올해 들어 북한을 잇달아 방문하는 등 양당 교류가 빈번하다. 노동당이 중공의 개혁개방을 제대로 배워 세계에 문을 활짝 열기를 기대해본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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