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구]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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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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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사회부 차장
이진구 사회부 차장
일제강점기 경주군 주석서기(主席書記)를 지낸 기무라는 후에 ‘조선에서 늙으며’라는 책을 썼다. 그는 책에서 “나의 부임을 전후해, 도둑에 의해 반출된 다보탑 돌사자 한 쌍, 등롱(사리탑)을 되찾아 보존상의 완전을 얻는 것이 죽을 때까지의 소망이다”라고 적었다. 이 구절을 보고 한참 의아해했다. 일본인인 그가 왜 조선의 문화재 보존이 소망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죽었고, 어떤 다른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진의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랜 의문 끝에 ‘혹시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국가와 민족, 이해관계와 상황을 떠나 자기 일에 진심을 다하려는 공복(公僕)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일본인인 그가 조선 문화재에 특별한 애착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조선총독도 문화재를 반출하던 시대에 도난으로 책임을 졌을 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던 한 시골 공무원이 어떤 상황과 관계없이 진심을 다해 일하려 했다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오래전 본 책을 다시 뒤적인 것은 최근 벌어진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수사개시권 명문화)를 보며 누구를 위해 그토록 시끄럽게 종을 울렸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따라서 권력기관 간의 권한 분배는 저의야 어떻든 국민과 국가에 이로워야 한다. 이 때문에 작은 이익집단조차 밥그릇 싸움 때는 말이라도 ‘국민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 문제는 정치인들의 필요로 시작됐다.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논쟁은 의원 후원금 모금에 제동을 건 검찰을 손보기 위해 시작된 면이 강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것이 수사권 조정 문제였다. 시작이 그랬더라도 국민의 공복이라면 “우리가 가져야 한다”고 싸우기보다 “우리가 가지면 이렇게 잘할 수 있다”고 말해야 했다. “저들이 가지면 문제가 생긴다”고 하기 전에 “우리가 이렇게 잘해 왔다”고 밝혀야 했다. 최소한 “중요한 권한을 가지려 하는 만큼 앞으로 이런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공박이 커지면서 국회는 손을 놨고, 총리실의 중재는 실패했다. 급기야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나서서 “타결이 안 되면 (이 방을) 못 나간다”고 으름장을 놔 일단락됐지만 이해득실 때문에 또 시끄럽다.

한 번쯤은 그들이 처음 제복을 입고, 고시에 합격했을 때 마음을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그때는 ‘불의에 맞서 거악(巨惡)을 척결하고, 약자를 부축해 일으키고, 굽은 것을 펴는’ 마음을 다짐했을 것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논쟁은 얼마나 초라한가. ‘공복’이 이해관계를 떠나 자기 일에 충실하다면 그것이 국민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리 없다. 국민의 이익을 먼저 말할 수 없는 ‘소유권’ 논쟁이라면 밥그릇 싸움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국회의원의 꿈이 고작 배지를 갖는 것일 수는 없다. 시인이 장식용으로 펜을 사는 것이 아니듯 공복이라면 자신의 권한을 다투기보다 어떻게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또 가진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제대로 사용해 왔는지 자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종(鐘)은 국민을 위해 울려야 하기 때문에.

이진구 사회부 차장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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