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차은영]대학 등록금 합리적 사고로 논의를

  • Array
  • 입력 2011년 6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대학에서 20년 넘게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 중 하나는 합리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비합리적일수록 득세하는 경우가 많다. 의견의 조율과 이해,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개선은 상호 간에 합리적일 때 작동하는 것이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기기 시작하면 논리는 없어지고 소모적 말싸움만 남게 된다.

더 세게 지르는 무책임한 정치권

최근 가열되고 있는 등록금 논쟁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치권의 공짜시리즈 경쟁으로 시작된 반값 논쟁은 출발부터 정책 대안으로서의 기능은 없고 중구난방 더 세게 지르고 보는 희한한 장이 되었다. 일부 언론은 마치 모든 대학이 부정한 것처럼 몰아붙이고 학생들은 등록금이 비싸다는 시위를 하기 위해 비싼 등록금의 대가인 수업은 안 받겠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치권의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사회 전체가 더 휘둘리기 전에 차분하고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왜 우리는 대학에 가려고 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대학 진학은 엄청난 사회적 현상이다. 좋은 대학을 가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때야 하고 할아버지의 기능까지 속설로 떠도는 지경이다. 수험생을 둔 아버지들은 일찍 퇴근도 못한다. 방해될까봐. 어머니들은 자녀가 진학한 대학 수준으로 인생을 평가받는다. 그뿐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은 관공서는 물론 증권거래소가 한 시간 늦게 개장하는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 한국이다.

그 결과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과거 대학 진학률이 20∼30%이던 시절에도 등록금은 소득 대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집안의 자원을 모두 투입해서라도 대학에 보낸 이유는 졸업 후 그만한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 졸업이 갖는 부가가치는 사라진다. 힘들게 대학에 보냈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대학 등록금이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학 진학을 위해 지출한 사교육비의 피로감이 누적돼 등록금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는 심리적 요인도 부인할 수 없다.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면 교육비 지출이 줄어들 것인가. 오히려 지출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극단적으로 모든 사람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를 가정해 본다면 대학은 더욱 고등교육기관으로 부르기 어렵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를 위해, 내 자식은 나와 다르게 살게 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될 것이다. 박사 이상의 학위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반값 등록금을 위해 수반되어야 하는 재정적 부담은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공짜만큼 매력적인 말은 없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 소비를 남이 지불하거나 남의 소비를 내가 지불할 수는 있지만 소비가 발생하는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정부의 지원은 결국 세금으로 보전해야 하는데 차기 당선을 위해 또는 정권을 잡기 위해 무조건 정부 예산으로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미래세대에 몰염치한 발상이다.

대학 거품 제거가 선행돼야

논의의 핵심은 대학 교육을 마치 시장통에서 반값으로 후려쳐 팔아버리는 게 목적인 양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등록금에 걸맞은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방안을 강구하는 데 있다. 우선 4년제 200개를 포함해 411개나 되는 대학과 364만 명의 대학생에 대한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지원과 대학재정 자립을 위한 사회적 논의는 그 다음이다.

아무리 레트로(복고)가 유행이라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시절은 지났다. 백년지대계의 청사진 안에서 호흡을 좀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