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공무원의 반달곰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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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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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저물어가던 무렵 공직사회에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승진에 유리한 보직으로 인식돼 공무원들이 선망하던 청와대나 여당 파견 근무를 꺼리는 사람이 늘었다. 차관급 승진을 내심 기피하는 1급 공무원도 적지 않았다. 반면 해외 주재관이나 국내외 교육 파견 같은 ‘눈에 띄지 않는 자리’는 선호도가 높아졌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 공직사회가 경험한 인사 쇼크에 따른 학습 효과가 낳은 이변(異變)이었다.

▷잘나가던 공직자가 정권 교체 이후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일은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에서 일부 나타났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두드러졌다. 일정 수준의 물갈이는 이해할 만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고 업무 능력과 무관한 연고주의가 판을 치면서 공직사회를 뒤흔들었다. 2002년과 2007년 대선이 다가오자 ‘1998년 쇼크의 재판(再版)’을 예상하는 공무원이 많았다. DJ 정권 말엽 ‘해외 잠수’를 선택했다가 노무현 후보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자 후회한 공무원도 있었다.

▷윤은기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이 어제 한 강연에서 ‘공무원의 반달곰 체질’이라는 표현을 썼다. 윤 원장은 “우리 공무원들은 정권 초기에 반짝 일해서 잘나가더라도 후반에 들어서면 동면(冬眠)에 돌입한다”면서 “열심히 해서 잘나가면 다음 정권에서 전(前) 정권 사람으로 찍힌다는 학습 효과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기 4년째인 이명박 정권도 지지율 하락 속에 권력누수 조짐이 나타나면서 보신(保身)주의에 급급한 공직자가 늘어나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보다 민주화 시대 정권에서 공무원이 외부 바람에 더 휘둘리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본연의 일은 뒷전이고 정치적 풍향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여야 정치권에 은밀히 줄을 대는 공무원들이 늘 문제다. 업무 능력은 떨어지는데도 풍향계를 살피며 잔머리를 굴리는 공직자일수록 나중에 분에 넘치는 감투를 쓰면 큰 사고를 칠 위험성이 높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는 직업 공무원이라면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지연 학연 혈연 같은 업무 외적 요인 때문에 특혜도, 차별도 받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공직사회의 ‘반달곰 체질’을 없애는 확실한 해법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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