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비판에 약한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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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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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기자들과 편한 자리에서 만나면 농담도 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끈다. 그러나 부정적인 질문을 받으면 금방 표정이 굳어진다. “아까 하셨던 질문이잖아요” “신문도 안 보셨어요?”라고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 국회에서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과 관련된 동생 지만 씨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쉽게 대할 수 있는 정치인이 분명 아니다. 좋게 보면 카리스마가 넘친다. 카리스마는 대중에게 신뢰를 주지만, 독선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과거 한나라당 총재로 있을 때도 그랬다. 한나라당 후보로 두 번 대선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그가 2007년 다시 무소속으로 대선에 나서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기존의 이미지 탈색이었다. 첫 선거대책회의 때 점퍼 차림으로 책상 위에 올라가 “앞으로는 나를 총재라고 부르지 말라”고 말해 뭇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의 변신은 너무 늦었다.

기자들조차 박 전 대표 대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오죽하겠나 싶다. 측근 의원들 중엔 박 전 대표 근처만 가도 주눅이 든다는 사람이 있다. 측근 의원이라도 박 전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비서를 통해야 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면 박 전 대표가 콜백(callback)하는 식으로 연락을 취한다고 한다. 만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측근 의원이라도 속마음을 나눌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데, 듣기 싫은 얘기를 어떻게 건네겠는가. 누군가가 측근 의원에게 박 전 대표에 관한 고언(苦言)을 전하면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고 입을 막거나 “나는 못 전하니 당신이 직접 해줄 수 없겠느냐”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적지 않은 국민은 이런 리더십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장래를 개척하는 데 걸맞은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 박 전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를 제외하곤 비판과 검증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야당 대표 시절엔 공격수로서 주로 비판을 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제는 수비수의 위치에 서야 한다. 집권여당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만큼 야당의 집요한 비판 공세에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 당내 다른 주자들의 견제와 공격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측근 의원들이 대신 막아주거나 단문(短文) 형식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큰 자산이다. 그럼에도 당내에서는 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꽤 많다. 과거 천막당사 시절의 자기희생적인 모습보다는 ‘부자 몸조심’하듯 지나치게 자기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정치 상황도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여당보다는 야당 후보를 찍겠다는 국민이 더 많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도 계속 통할지 미지수다. 작년 6·2지방선거 때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자신이 적극 밀었던 한나라당 군수 후보가 무소속 후보한테 패한 것이 우연일까.

박 전 대표가 꿈을 이루려면 더 늦기 전에 자기변신부터 꾀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위에 둘러친 장막부터 걷어내야 하고 비판에 익숙해져야 한다. 비판을 견뎌내는 내공(內功)과 맷집이 약하면 장거리를 뛰기 어렵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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