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창원]전관예우 근절안 ‘2% 부족’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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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식당에서 일생 동안 일하면서 하루에 3000원, 4000원씩 36년이나 모은 겁니다. 300원짜리 양말 하나 안 사고 모은 걸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떼먹을 수 있습니까! 그건 돈이 아니라 제 ‘피’입니다.” 이것은 어느 TV 시사프로에서 본 모 저축은행 피해 할머니의 피맺힌 절규다. 할머니는 대한민국에 도대체 ‘정의’ 비슷한 게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고위공직자 취업제한 강화했지만

그렇다. 대한민국에서는 현재 ‘정의’ ‘공정성’이 화두임에 틀림없다. “금융감독원이 아니고 금융강도원(?)이다”라는 ‘조롱’은 야당이 아니라 현직 여당 고위당직자의 질책이다. ‘전관예우’ ‘프로축구 승부조작’ ‘반값 등록금 등 복지 확대 논쟁’ ‘부자 감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관행’, 이 모든 것의 핵심 키워드는 공정성과 정의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요즘 저축은행 문제가 발생한 것도 전관예우가 전체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 이유가 된다”면서 “전관예우는… 오늘날 새로운 잣대를 놓고 보면 이것이 가장 공정사회에 반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현 정부 들어 28명의 고위공무원이 퇴직 후 저축은행이나 그 관계사에 재취업했고, 어느 인사는 퇴직 당일 저축은행에 취업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금번 저축은행 사태 등 여론의 강한 압박을 이기지 못한 정부는 ‘공직윤리제도 강화방안’이라는 것을 거창하게 발표했다. 이 방안은 퇴직 공무원의 취업 제한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고위 공직자가 퇴직 전 1년간 근무한 기관의 업무를 퇴직 후 1년간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소위 쿨링오프(cooling off·업무제한) 제도와 퇴직공직자가 민간기업에 취업해 현직 공무원에게 청탁이나 알선 등을 요구할 경우 형법을 준용해 처벌하는 ‘행위제한’ 제도까지 도입하는 등 일견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상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엉성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벌써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우선 현재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취업 승인율이 96%나 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민간위원 5명과 정부 측 위원 4명이 심사하는 현행 제도에서 민간위원 수를 늘린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아무리 공직자윤리위가 심사대상 기간을 퇴직 전 5년으로 늘리고 또 민간위원 수를 늘려 심사한다고 해도 재취업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가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또 취업심사 대상 업체 기준에 외형 거래액 300억 원 이상 로펌과 회계법인을 추가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회사를 잘게 쪼개 ‘공동사업자’ 형태를 취할 경우에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여기에 소위 부당행위라는 것은 당연히 은밀하게 이뤄지는데 어떻게 적발할 것이며 수십, 수백 배의 이익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도대체 무슨 억제효과가 있겠는가 하는 지적에도 답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가장 확실한 전관예우 근절책은 퇴직 후 일정 기간 벌어들이는 수입액을 제한하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겠는가.

심사제도-입법과정 잘될지 의문

물론 더 큰 장애는 이번 전관예우 관행 근절 방안과 변호사법 개정안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위헌 소지 가능성을 제기할 일부 국회의원과 법조계의 대응이다. ‘법의 정신’을 ‘기술적’으로만 해석한다면 그들은 어떻게든 각종 법률 지식을 활용하여 전관예우 관행 근절 방안의 입법화를 저지하려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앞에서 제시한 “대한민국에 도대체 ‘정의’ 비슷한 게 있느냐”는 저축은행 피해 할머니의 피맺힌 절규에 눈을 감는 것이다. 이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고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정의’가 아직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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