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기업 무한탐욕,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30일 03시 00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시장 진출 실태 및 부작용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대기업 계열 MRO 회사들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한 사실이 드러나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방침이다. 또 상당수 MRO 계열사 대주주가 오너 일가(一家)라는 점에 주목하고,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부(富)의 대물림과 편법 상속에 악용됐는지도 살펴보기로 했다.

MRO 사업은 기업 운영에 필요한 자재를 대신 구매해 납품하고 관리, 컨설팅해 주는 사업을 말한다. 대기업들은 2000년을 전후해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경쟁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은 연간 27조 원 규모의 시장으로 커졌다. 대기업 계열 MRO 회사들은 같은 기업 계열사에 대한 구매 대행은 물론이고 자금력과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정부 공기업 등 공공부문과 비(非)계열 기업 시장까지 파고들었다.

대기업이 MRO 회사를 앞세워 볼펜 전구 복사용지 쓰레기통 구매시장까지 싹쓸이하면서 소모성 자재를 생산하고 납품해온 중소 영세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납품단가 인하 압력에 시달려 수익성이 악화하고 기존 거래처와의 직접 거래는 격감했다. 한국산업용재협회와 한국베어링판매협회는 지난해 4월 중소기업청에 삼성 계열 아이마켓코리아(IMK), LG 계열 서브원, 포스코 계열 엔투비, 코오롱 계열 코리아이플랫픔(KeP) 등 4개 MRO 업체를 상대로 사업조정을 신청했지만 사정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대기업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삼성과 LG그룹은 최근 MRO 사업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 코오롱, KT, SK 등 MRO 계열사를 둔 다른 대기업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삼성과 LG의 발표대로 하더라도 영업 대상에서 제외되는 고객 매출 비중은 전체의 10% 안팎에 불과하다”며 “종전보다는 한 발 나아갔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한 상생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대기업들은 MRO 사업을 시작하면서 계열사의 구매 관련 업무 효율화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당초 취지대로 계열사 구매대행만 하고, 공공기관이나 다른 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은 중단하는 게 마땅하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라고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대기업들의 무한탐욕으로 중소기업인들의 시름이 깊어지면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부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까지 흔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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