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광복]국정원 50년, 그들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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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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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전 국정원 기조실장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안광복 전 국정원 기조실장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국가정보의 총본산인 국가정보원이 창립 50돌을 맞는다.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출범한 지 반세기, 공과(功過)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한때 대통령을 시해한 패륜아로 불리고, 역할을 인정받지 못해 서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1961년 6월 10일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을 때 그들이 이런 손가락질을 받을 줄은 몰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잘 기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컸으리라! 그러나 격랑의 시대 상황은 중앙정보부를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창설 때부터 국가안보에 기여해온 공(功)도 있지만 정권 보위에 동원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로 인해 국정원 50년 역사는 오점과 얼룩으로 점철돼 있다. 정치공작의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했고, 민주화에 역행하는 인권탄압 시비에 휩싸이기도 했다. 해외공작 실패로 외교문제를 일으키고,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해 아마추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 요구를 거세게 받아왔다. 명칭도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으로 바뀌었다. 원훈도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에서 ‘정보는 국력이다’, 그리고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바뀌었다. 조직구성원의 변화도 피해갈 수 없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른바 ‘내곡동 잔혹사’라는 인적 청산이 뒤따랐다. 5년마다 반복되는 이 일은 조직의 전통과 구성원의 전문성이 단절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50년 역사 흐름에서 보면 국정원은 확실하게 변했다. 정치 개입은 불가능해졌고, 인권탄압 시비도 보기 어렵다. 21세기 민주화시대에 걸맞은 정보기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국민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공채에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몇 년 사이 ‘아테나’를 비롯한 여러 편의 국정원 관련 영화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끈 것이 이를 증명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일반 공직자와 다른 특수한 성격을 갖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한다. 자신의 윤리관과 상충되더라도 국가를 위해서라면 두려움 없이 자신이 맡은 일을 한다. 내가 아는 그들은 한시라도 국가와 국민을 잊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의 아픔’을 간직하며 산다. 이웃에게, 심지어 가족에게도 자신을 숨기며 살 수밖에 없다. 업무성격상 성공은 감추어지지만 실패가 드러나면 설명도 변명도 할 수 없는 게 정보요원이다. 얼마 전 호텔사건을 두고 유치한 B급 코미디 같다는 비난을 들어도, 상하이에서 무얼 했느냐는 질책을 들어도 ‘무명의 헌신’이라는 말 그대로 오늘도 묵묵히 제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주어진 숙명을 감수하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창립 50주년은 새로움을 모색할 수 있는 전환의 기회다. 이제까지가 과거의 폐단을 고치는 데 힘을 기울여온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본연의 정보능력을 끌어올려야 할 때다. 그동안 익숙해진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워야 한다. 백화점식으로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갖는 후진국형 정보기관에서 정보기관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핵심업무에 집중하는 선진국형 정보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북 정보활동이 제1의 정보목표가 돼야 하지만 끝없이 진화하는 각종 안보 위해 요소에 대해서도 한발 앞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정보기관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 정치권과 언론, 사회 각계도 이들의 발전을 위해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기 바란다. 공자는 나이 50세를 지천명이라고 했다. 공조직에 있어 천명은 국민의 뜻이다. 창립 50년 이후 국정원 역사는 국민의 믿음과 사랑 안에서 새롭게 쓰이기를 기원한다.

안광복 전 국정원 기조실장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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