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의진]우리 아이들의 그늘, 극단의 결핍과 과잉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드높은 싱그러운 5월은 어린이들의 축제가 풍성한 계절이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 뒤에 기나긴 그늘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진료를 하면서 가슴이 아팠던 두 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언어발달 지연과 분노 조절 문제가 심각하여 내원한 여섯 살 남자 아이는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고 자주 어머니를 때리는 등 무법자처럼 행동하였다. 심지어 처음 본 의사에게도 반말과 침 뱉기를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유치원에서 다른 친구들과 교사들이 도저히 견디지 못해 병원 진료를 강력히 권유하여 큰 병원에까지 오게 되었다. 아이가 행동 문제를 심하게 가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두드러진 것이 돌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나라로 갑자기 보내졌다가 세 돌이 지나 다시 한국의 부모 곁으로 보내진 사실이다. 외국인 출신 어머니는 돈을 벌어 친정집에 보내고 아이가 젖을 떼자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아이를 자신의 나라로 보냈다가 유치원 입학할 나이에 데리고 온 것이다. 하지만 유아기에 갑자기 부모와 헤어져 이국땅에서 생면부지의 친척들과 지내야 하는 아이는 얼마나 두렵고 참담했을까? 실제로 아이는 2년 내내 말도 잘 안 하고 시선 접촉도 없이 지내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아 몸과 마음의 성장이 거의 멈추었다고 한다. 아직 두뇌 발달이 왕성한 유아기에 끔찍한 스트레스를 겪은 아이의 뇌는 상당한 손상을 입고 정서 및 분노 조절 능력이 결여돼 다양한 발달상의 문제를 보이게 된다. 현재 이 땅의 다문화가정에서 이러한 일들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발달장애와 신경쇠약 두 아이

서울 강남의 영어유치원에 다닌다는 다섯 살 여자 아이는 조부모가 부모 몰래 병원에 데리고 왔다. 아이가 주말에 조부모 댁에 놀러 왔는데 일요일 저녁이 되자 노느라 숙제를 못 했다고 울면서 짜증을 내고 급기야 소변을 지리는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숙제를 못 하거나 단어시험 점수가 나쁘면 엄마가 야단을 치고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놀린다고 아이는 많이 두려워하였다. 조부모는 아직 한창 신나게 놀고 행복해야 할 나이의 손녀를 안쓰러워하며 아이들에게 이런 스트레스를 가하는 부모와 우리 현실이 과연 정상이냐고 내게 물었다. 심리평가 결과 아이는 불안 증상과 자신감 저하가 심각하여 치료가 많이 필요한 상태였다.

안정된 애착관계를 바탕으로 정서적 안정을 이루어야 할 유아기에 환경적 박탈을 당해 제대로 성장을 못한 다문화가정 출신의 발달장애 아이와 반대로 지나치게 과도한 인지적 자극과 경쟁으로 신경쇠약에 걸린 아이! 이 두 아이는 해맑은 미소 뒤에 드리운 그늘의 극명한 실제 사례가 아닐까? 아이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소수자이다. 이들의 인권과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자 사회의 미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이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극과 환경을 제공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편의와 욕심을 기준으로 아이들의 마음에 길고 진한 그늘을 남기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부유한 가정에서 아이들은 지나치게 결핍되거나 과잉된 환경 자극으로 마음의 건강까지 잃고 있다. 심지어 각종 사교육 시장은 이 틈새를 노려 약한 부모 마음을 흔들어대고 성황리에 사업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경쟁에 내몰고 암기 공부에 매달리게 하는 부모들은 ‘이래야 살아남는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을 통해 인재를 양성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앞다퉈 자녀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성장에 꼭 필요한 환경을 자녀에게 마련해주지 못하는 소외계층 가정에 필요한 교육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역시 몹시 부족하다. 겉으로 다문화가정을 돕는다는 구호만 요란하지 실제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제도의 마련은 오히려 뒷전이다. 이러다가는 현재 우리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할지 생각하기조차 끔찍하다.

어른들 욕심에 마음의 상처 남아

현재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출산율의 저하와 자살률의 증가는 오래전부터 아이들의 아픔을 무시해온 우리 어른들의 무지함과 비정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부터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균형 잡힌 양육을 위한 노력을 그동안 기울이지 않았기에 생긴 문제를 사후약방문 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니 그 효과가 미미한 것이다. 저출산과 자살을 막기 위한 노력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영유아기 아동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기르는 방향으로 사회적 가치와 정책을 세워 나가야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표현할 수 없기에 우리 어른들이 먼저 나서서 우리의 미래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